[인문·교양] 최순덕 성령충만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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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문학과지성사, 333쪽, 1만원

1999년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소설가 이기호(32)씨의 첫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눈길을 잡아 끄는 기이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낯선 것에 대한 이씨의 편향은 소설 형식에서도 정상적인 것, 상식적인 것을 못 참게 한 것 같다. 다양한 시도가 보인다.

‘백미러 사나이-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장황한 제목의 작품은 뒤통수에 눈이 달려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다.

주인공 ‘그’의 뒤통수에 고양이 눈 크기만한 구멍 두 개를 만들어준 사람은 70년대 말 전매청 산하의 외국산 담배 특별단속 반원으로 활동하면서 나름대로 ‘위세’를 휘두르던 아버지였다. 국부(國父)처럼 여겼던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독일제 32구경 7연발 권총에 쓰러지는 현장을 재현하는 장면을 TV로 시청하다 흥분, 수상기를 향해 던진 재떨이의 파편이 그의 뒤통수에 박힌 것. 두 구멍은 돌팔이 의사에 의해 꿰매지면서 단순한 구멍이 아닌, 뒤통수에 달린, 실제로 볼 수 있는 눈이 된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자라는 소문이 돌았던 돌팔이 의사 최씨는 그의 아버지·어머니에 대한 반감으로 ‘나쁜 짓 하면 뒤통수 박통의 눈이 네 눈을 잡아 먹을 것’이라고 저주하는데, 저주가 실현되는 것이다.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의 주인공 황순녀는 어느 날 참나무 숯처럼 검은 윤기가 흐르는 소에게 ‘일’을 당한 후 아들 황우석(黃牛石)을 낳는다. 순녀는 건장하게 성장했지만 걷는 것보다 기는 것에 더 익숙한 열세살 우석의 등에 어느 날 쟁기를 얹어 감자밭을 갈도록 한다.

표제작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진학·취업 등 사회 활동을 일절 거부하는 기독교 광신도 최순덕이 여학교 앞 ‘바바리코트’였던 한 남자를 전도해 결혼하는 이야기이다.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기만 하는 단순한 구성이지만 마치 성경처럼 보이도록 한 쪽을 두 개의 칼럼으로 구성했다. 래퍼로 성공하는 보도방 출신을 다룬 ‘버니’는 잦은 쉼표를 사용, 소설 문장이 랩 가사처럼 읽힌다.

소설의 재미를 더하는 것은 비꼬고 비트는 이씨 특유의 능청스러운 화법, 현실 세계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법하지 않은 희극적인 사건의 진행 등이다. 가령 ‘백미러 사나이’의 그는 학생 데모대와 전경들이 대치한 일촉즉발의 순간 뒤통수에 달린 눈을 십분 활용, 뒤로 뛰어다님으로써 전경들을 어리둥절하게 해 가투를 승리로 이끌고 총학생회의 총애를 받게 된다.

생각해 볼만한 점은 이씨의 상상적이고 허구적인 얘기의 바탕에 현실 세계가 은근히 깔려 있다는 것이다.

‘백미러 이야기’에서 그의 뒤통수에 생긴 박통의 눈은 제도권 교육과 미디어에 의해 강요된 획일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세계관으로도 읽힌다. 그는 박통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발버둥치지만 끝내 싸움에서 지게 되고 시력을 잃는다.

‘최순덕 성령충만기’가 딴죽 거는 대상은 외곬으로 치닫는 종교적 맹신주의자들이다.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에서 군대는 사단 병력이 똑같은 밤 꿈을 꾸는 곳으로 비꼬아진다.

‘간첩이 다녀가셨다’는 소설집에 실린 작품 중 가장 현실에 접근한 소설이다. 북한 잠수함 침투라는 실제 상황에 따라 동원된 예비군들의 술판, 우발적인 살인 등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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