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시 부활로 자율 물건너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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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신문협회 신문공정경쟁심의위원회 위원 5명이 말썽많은 신문고시(告示)에 반대해 전원 사퇴를 결의했다.

이 위원회는 소비자 단체와 학계.언론계 등 순수 민간분야 대표들로 구성돼 있다. 정부 또는 일부 단체가 고시 반대에 앞장선다고 몰아붙이는 '빅3' 신문사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

이들이 왜 공동사퇴란 극단적인 행동을 택했을까. 고시 부활이 언론계에 대한 압박이자 비판적인 여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나왔음을 현장에서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는 또 정부가 내세우는 '자율규제.자율감시 우선론' 이 허구임을 잘 말해준다.

조용중(趙庸中)심의위원장은 "자율규약 체제로 나름의 성과가 있었는데 고시 부활로 자율체제를 유지할 수 없게 돼 모두 사퇴키로 했다" 고 설명했다.

일부 위원은 "우리가 너무 엄격하게 벌과금을 물리는 바람에 신문사나 지국 활동이 위축될 지경이었는데 이런 실태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고 항변했다.

이는 "자율규제가 이뤄지지 않아 고시를 부활시키게 됐다" 는 정부의 논리가 얼마나 현실과 거리가 먼 억지인지를 말해준다.

공정경쟁심의위원들의 일괄 사퇴에 따라 신문협회의 자율규제 규약 및 자율감시기구 구성 논의는 일단 난관에 부닥쳤다. 정부와 정치권에 요구한다.

아직 고시안이 공정위 전원회의를 통과하지 않은 만큼 이번 기회에 민심과 현실을 정확히 읽고 지금이라도 무리한 부활 계획을 중단하기 바란다. 설사 7월부터 고시를 부활시키더라도 규제개혁위원회의 정신을 존중해 시행을 업계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신문협회가 지난해 11월부터 시행 중인 새 신문공정경쟁규약은 단 1원짜리의 경품도 허용하지 않고 위반시 엄한 위약금을 물리는 등 정부 고시안보다 훨씬 강력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고시에 반대하던 규개위가 막판에 동의한 것도 '자율규제' 를 전제로 한 것이다. 이런 점들을 무시하고 계속 '직권조사' 운운하며 정확한 민의의 전달과 건전한 비판까지 막으려고 한다면 국민의 비판과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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