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을 살리자] 인재도 문화도 '서울 독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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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경북 포항 출신인 서울 H대 법학과 4년 黃모(22)씨가 지금까지 들인 서울 유학비는 4천3백여만원. 등록금(1천4백만원)은 아버지가 다니는 포항 소재 회사의 학자금 지원으로 충당했지만, 나머지 2천9백만원은 부모가 부담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 재학생 40여만명 중 지방출신은 절반 가량인 20만명선. 이들을 위해 지방에 사는 학부모들이 서울로 보내는 등록금만 연간 9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교육인적자원부는 추산한다.

그럼에도 서울에 있는 일류 대학을 지향하는 지방의 학부모와 고등학교의 노력은 눈물겹다. 지방 거점도시에 있는 적지 않은 고교들은 우수 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울대반' 을 편성해 1년간 합숙을 시키기도 한다.

전북 S대의 李모 교수(38)는 지난 4년간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지도교수로서 담당했던 40명의 학생 중 졸업한 사람은 14명. 나머지는 자퇴했거나 휴학 중이다.

졸업한 14명 중 절반은 ▶학습지 교사 취업▶소규모 건설회사 취직▶대학원 진학▶군 입대 등을 했지만 일곱명은 아직까지 무직자로 있다.

李교수는 "취업을 알선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봐도 워낙 지역경제가 침체해 있어 신규채용을 하는 업체를 찾기 어렵다" 고 했다.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경북 D대학은 재학생(2천7백여명)과 휴학생의 숫자가 비슷해졌다.

돈과 사람, 그리고 기회까지 서울에 쏠리는 현상은 문화 쪽도 마찬가지다.

강원도 인제군에 사는 사람들은 전국 1백22개 영화관에서 이미 4백27만명이 관람한 개봉영화 '친구' 를 보려면 1시간반 가량 버스를 타고 춘천시로 나와야 한다.

22개 시.군이 있는 전남에는 12개의 영화관이 있다. 그나마 모두 목포.여수.순천시 등에 몰려 있고, 17개 군에는 단 한 곳도 없다.

전국적으로 89개 군 지역의 총인구는 5백90여만명. 하지만 대부분의 군 지역에는 영화관이 없다.

지역 전통문화 행사를 기획해온 청주 민예총의 한 관계자는 "지역에 큰 공장이 있는 기업들에 재정지원을 요청하면 '서울 본사에 결재권이 있어 곤란하다' 며 거절하기 일쑤" 라고 답답해 했다.

문화관광부에 등록돼 있는 1만2백여명의 공연자 중 서울에 5천3백여명(52%)이 몰려 있으며, 지난해 열린 3만2천회의 공연행사 가운데 서울(1만5백회).인천(9백회).경기(5천6백회) 등 수도권에 53%가 집중됐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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