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일본 조총·칼 - 조선 인삼, 17세기 대한해협 건너 몰래 오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17세기 한국과 일본 간 무기 밀거래가 있었다. 효종의 북벌정책 추진과 밀접히 관련된 듯하다.”

일본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 김문경(58) 교수의 주장이다. 19일 단국대 동양학연구소(소장 서영수)가 주최하는 국제학술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다. 학술회의는 이날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단국대 대학원동(법학관) 319호에서 열린다.

김 교수의 논문 제목은 ‘17세기 한일간의 무기 밀수 사건에 대하여’다. 그에 따르면, 밀수는 일본의 지방 상인과 조선 정부 사이에 행해졌다.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품목은 조총·유황·일본 칼 등 무기류이다. 무기를 구입하는 대신 조선에서는 특산품인 인삼을 내줬다.

무기류와 인삼을 밀거래한 이유는 일본 정부가 무기의 해외 반출을 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조선 정부도 공식 거래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겉으론 노비를 내세워 거래했지만 배후엔 비변사가 있었다. 비변사는 조선 후기 정부의 최고 의결기관이었다.

17세기는 청나라가 조선을 침입한 병자호란(1636년, 인조 14년)이 일어난 시대다. 이 시대에 한일간 무기 밀거래가 이뤄진 이유를 김 교수는 효종의 북벌 정책과 연관 지었다. “17세기 전반 청나라의 조선 침입으로 북방에 긴장감이 조성되고, 효종이 북벌 정책을 추진하면서 군비를 강화한 일과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당시 조선이 청에 대해 화전(和戰) 양면 작전을 편 것 같다고 했다. 한편으론 조총과 유황으로 군비를 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수입한 일본 장검을 청나라 정부 실력자에게 선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김문경 교수는 일본·조선·중국의 역사 자료에서 이 같은 주장의 근거를 찾았다. 일본 자료인 『당통사심득(唐通事心得)』에 17세기 나카사키의 거부였던 이토(伊東)가 조선에 열 세 번이나 가서 무기를 팔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조선 자료 『조선왕조실록』의 인조·효종·현종 편에는 무기 밀수 관련 고위 관료들의 논의가 나온다. 청나라 자료 『황청개국방략(皇淸開 國方略)』에는 조선이 일본도를 청의 실력자에게 보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에 대해 단국대 사학과 김문식 교수는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17세기 한일 간 무기 밀무역의 실상을 밝혀내면서, 그 파장이 청나라에까지 나타남을 논증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며 “17세기 한일 간의 무역은 대개 쓰시마섬의 중계를 통해서만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해 왔는데, 나가사키 상인이 무역에 직접 개입했음을 보여줌으로써, 이 분야 연구의 시각과 범위를 더욱 넓혀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배영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