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식인 지도] 사이버시대의 혁명가 마르코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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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우리들은 지난 5백년간의 산물이다. "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1910~17년 멕시코 혁명의 영웅이었던 사파타의 정신을 이어받아 94년 1월 1일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에서 결성된 게릴라 단체)은 그들의 전쟁 선언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유럽의 근대가 탄생하는 16세기에 노예화와 굴종의 길을 걸어야 했고, 19세기에 독립을 해서도 '2등 시민' 으로 갖은 수모를 견뎌야 했던 멕시코의 인디오(마야 원주민)는 1994년 새해 벽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하는 그 날에 '정의, 자유, 민주주의' 를 외치며 궐기했다. 이 게릴라군 한가운데,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부조리를 고발하는 마르코스(Marcos) 부사령관이 도사리고 있다.

인터넷 전쟁(net war.전통적인 무기 대신 인터넷을 통한 담론 투쟁)의 전도사, 이 시대의 유행인 '차이의 정치' 를 강조하는 지식인, 권력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게릴라.

혁명가가 아니라 '반항아(rebel)' 로 자기를 규정하는 그는 비판적인 지성의 흐름이 형해화(形骸化)한 이 시대를 향해 외친다. 스키 마스크에다 당신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비춰보라고.

57년생으로 평범한 중류 가정에서 순탄하게 자란 그는 국립 멕시코 자치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명은 라파엘 세바스티안 기옌 비센테다. 80년에 '철학과 교육:담론적 실천과 이데올로기적 실천' 이라는 제목의 학사 학위 논문을 썼다는 마르코스.

당시에 유행하던 루이 알튀세르, 니코스 풀란차스, 그리고 미셸 푸코에 심취한 적이 있는 그는 멕시코 시립자치대에서 강의를 하다가 제도권에는 탈출구가 없다는 고민 끝에 83년 치아파스의 열대우림 지대인 라칸돈에 있는 인디오 공동체 운동에 뛰어든다.

외채위기와 멕시코 제도혁명당의 부패에 환멸을 느껴 게릴라의 전위(前衛)가 되려고 뛰어들었지만, 그는 공동체의 삶 속에서 큰 변화를 겪는다. 농민을 지도하러 갔으나 오히려 그들로부터 지혜를 얻게 된 것이다.

그는 곧 체 게바라도, 레닌도, 마오쩌둥(毛澤東)도 버린다. 오로지 마야 인디오 공동체의 전통 속에서 멕시코와 신자유주의 체제를 비판할 기호와 문법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의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공동체 민주주의' 를 향한 인정투쟁(소수의 권익을 인정받고자 하는)은 개인적인 사색의 결과라기보다는 이런 공동체 생활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리라.

그런 점에서 서재의 사상가로서의 "마르코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 그는 사파티스타 운동이란 특정한 맥락 속에서 살아 숨쉬는 실천이며 사상일 뿐이다. 동료의 표현을 빌리면 개인 마르코스는 반란 개시일에 "죽은 채로 태어났던 것" 이다.

반군(叛軍)의 선언문에서부터 서한에 이르기까지 그는 끊임없이 쓰고 대화를 나눈다. 세계 언론과 인터넷에 올려진 그의 글들은 시적 운치와 철학도의 고뇌가 배어 있는 명문장이다. 신자유주의와 화석화한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도 준열하다.

인디오 문명의 생태주의 철학으로 야수적 자본주의의 흉칙한 모습을 고발하기도 한다. 담론이야말로 권력관계의 핵심이라 본 점에서 그의 담론 투쟁 방식은 '푸코적' 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게릴라 전쟁을 치르는 그는 빌 게이츠를 닮기도 했다.

검은 색 스키 마스크를 당신네들(신자유주의자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비춰보는 '거울' 이라고 선문답하는 마르코스. 도대체 그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 그는 통합을 통해 하나됨을 강조하는 '메스티소 민족주의' , 즉 인디오가 모성적 뿌리이면서도 막상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억압성을 비판한다. 멕시코의 노벨상 수상작가 옥타비오 파스가 정형화했던 '멕시코 민족성(mexicanidad)' 논리는 종족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통합 이념은 1천만 인디오들을 사실상 시민에서 배제시킨다. 사파티스타들은 허구적인 통합이 가져온 사실상의 배제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자신들의 문명을 '존엄성을 지닌' '살아 있는' 것으로 인정해 주길 바란다.

둘째, '차이' 에 기초한 '다원주의' 를 요구하는 인정투쟁은 오랫동안 인디오 해방신학과 해방철학을 강조해 왔다. 마르코스는 이러한 전통의 승계자로, '근대성의 타자' (근대성 담론의 주동자였던 유럽 사람들에게 제3세계는 늘 열등한 타자였다)로 끊임없이 수탈당한 인디오의 역사적 위상을 복원하려 한다.

나아가 이러한 인정투쟁의 논리는 여성과 같은 가부장제의 피해자들에게, 실업자와 빈민과 같은 신자유주의 피해자들에게 함께 권리 투쟁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소수자들의 인정투쟁은 자연스레 신자유주의 질서 아래 배제된 다수자들의 투쟁으로 전화(轉化)하게 된다.

셋째, 마르코스는 국가권력의 장악을 우선시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실천과 결별하고, 거점을 만들어서 중심권력을 공격하는 체 게바라류의 '포코(Foco)주의' 도 버렸다. 사파티스타들은 권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마르코스에 따르면 권력을 요구하는 정치적 좌파는 위로부터의 동원에 익숙하고, 결국은 제도화하고 화석화될 따름이다. 마르코스는 아래로부터 대중을 동원하는 반(反)국가주의적 실천과, 영원한 반란을 꿈꾸는 사회적 좌파로 남을 방법을 모색한다. 그는 결단코 '정치인' 이 되길 거부하고 카뮈적인 '반항인' 으로 남고자 한다.

마르코스와 사파티스타 운동은 신자유주의의 강풍이 휩쓸고 있는 이 시대에 반세계화 운동의 아이콘이 돼버렸다. 주세 사마라구.알랭 투렌과 같은 중량급 지식인들도 그를 극찬한다. 페미니스트들은 반군의 '여성법' 을 보고 감동한다.

중남미의 지식인들은 그로부터 지난 5백년 근대화의 역사를 반추하는 기회를 얻었고,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은 파편화한 세력을 결집시키는 상징을 얻게 되었다. 정부와 협상하기 위해 비무장으로 멕시코 시티에 상경한 이들은 평화적 대행진을 마치고 다시 거점인 치아파스로 내려가 현재 인디오 보호입법과 관련 헌법 개정을 기다리고 있다.

해방신학이 죽었고, 종속이론이 사라졌고, 게바라가 관광상품으로 팔리는 이 시대에 그들은 실천으로 새 길을 열어가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이들의 목표가 권력쟁취는 아니어서 대의제 민주주의 등의 모순을 타파할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성형 중남미정치.정치학 박사

<말말말>

"나는 공산혁명가인 체 게바라가 아니다. "

- 지난 3월 평화행진에 앞서 가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투쟁 목적이 권력장악이 아니라 인디오의 빈곤타파라며 한 말

"조용한 분노의 그림자, 우리의 길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쌀 것이다. "

- 94년 3월 멕시코 민중과 전세계 언론에게 띄운 편지에서

"멕시코가 자기 가면을 벗으면 부사령관(마르코스)도 가면을 벗을 것이다. "

- 1994년 1월 언론에 보낸 편지에서. 멕시코의 시민사회가 거짓 이미지의 길고도 게으른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며

<번역서>

▶사빠띠스따 : 신자유주의, 치아빠스 봉기, 그리고 사이버 스페이스(해리 클리버 지음, 98년, 갈무리)

▶분노의 그림자(마르코스 지음, 99년, 삼인)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마르코스가 쓴 우화소설, 2001년,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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