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치] 명승부 열전 대통령배 고교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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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1990년 당시 공주고 2학년이었던 박찬호를 처음 보았다.

요즘 인기 절정인 영화 '친구' 에 등장하는 장동건과 같은 까까머리였다. 왼쪽 뺨 흉터는 그대로였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몸도 마른 편이어서 유니폼도 헐렁했다. 인상깊었던 것은 그의 눈빛. 마치 영화 속 장동건처럼 도전적이었다. 쉽게 다가가기 힘든, 뜨거운 야망이 담긴 눈빛이었다.

그는 당시 선배 신재웅, 후배 노장진과 함께 철벽 마운드를 구축했지만 큰 경기에는 약했다. 공주고는 대통령배 1회전에서 경북고, 2회전에서 휘문고를 차례로 꺾고 8강까지 올랐으나 복병 마산고에 2 - 4로 패해 4강 문턱에서 탈락했다.

박찬호를 만나기 14년 전인 1976년에는 김성한(해태 감독)을 처음 만났다. 당시 군산상고는 고교 야구 최고 인기 팀이었다. 1972년 '스마일 피처' 송상복과 함께 명승부를 연출, '역전의 명수' 라는 별명을 얻은 군산상고의 인기는 '자, 지금부터야' 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해 대회에서는 김성한의 1년 선배들이 화제였다. 최동원(경남고).김용남(군산상고).김시진(대구상고)이었다. 초고교급 투수로 이름을 날리던 이들은 대통령배 대회에서 함께 마운드에 올라 진정한 최고수를 가렸다.

최후의 승자는 김용남. 결승에서 김시진과 벌인 한판 승부는 투수전의 '백미' 였다. 김시진은 2안타만 내줬으나 9회초 1점을 허용한 반면 김용남은 6안타 무실점으로 대구상고 타선을 완봉, 짜릿한 1 - 0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다.

김성한을 만나기 1년 전인 1975년 김윤환(광주일고)이 밤하늘에 쏘아올린 세 발의 폭죽은 로버트 레드퍼드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내추럴' 보다 감동적이었다. 그는 제9회 대통령배 결승에서 경북고 성낙수를 상대로 5, 6, 8회 고교 야구 최초로 3연타석 홈런을 때렸다.

그가 첫 획을 그은 고교 야구 3연타석 홈런은 16년을 기다리다 1991년 제25회 대회에서 광주일고 후배 김종국(해태)이 충암고를 상대로 재현했다. 그해 김종국의 두번째 3연타석 홈런과 함께 임선동(휘문고)의 투구도 '예술' 이었다. 그는 1회전에서 정민철(요미우리 자이언츠)이 버틴 대전고를 상대로 탈삼진 20개를 기록하는 위력을 선보였다.

이 모든 고교 야구의 추억은 그들이 프로야구 주축을 이루는 스타로 성장하고,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는 지금 더 아름답고 소중하게 남아 있다. 성인으로 자란 이들의 활약을 청소년 시절과 비교해보는 것은 낡은 일기장을 더듬어보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내일 제35회 대통령배가 막을 올린다. 프로야구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풋풋함이 배어 있는 고교야구, 이번 대회에서는 또 누가 '추억의 명승부' 로 기억될 주인공이 될 것인가.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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