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센 자를 물어 뜯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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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시중의 열화와 같은 인기를 얻고 막을 내린 TV드라마 '아줌마' 의 한 장면에 나오는 말이다. 지식인의 허영을 상징하는 극중 주인공 하나가 '뜨고 싶으면 센 자(者)를 물어뜯어라' 고 친구에게 권하는 내용이 있다. 뜨고 보자는 지식인 세상의 세태 속에서 혼자의 능력으로 뜰 수 없는 사람이 유일하게 뜰 수 있는 비결을 풍자적으로 내뱉은 명대사가 아닐 수 없다.

***지식사회의 해악적 풍토

요즈음 소위 뜬 사람들 즉, 명성과 권력을 획득한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두 가지 유형이다. 첫째는 스스로 각고의 노력을 통해 자기분야의 독창적인 영향력을 확보한 경우고 둘째는 자기 노력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을 물어뜯어 유명해진 경우다. 전자의 경우가 절치부심한 흔적과 노력의 산물이라면 후자쪽은 아무래도 전자의 결실이 없다면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어부지리의 경우다.

드라마의 작가가 풍자한 세태의 핵심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대사를 듣자마자 우선 먼저 연상된 사례가 노자.공자 얘기로 인구에 회자된 도올 김용옥의 TV강좌다.

누가 뭐래도 초저녁 잠이 많은 팔순의 나의 어머니까지 TV 앞에 붙잡아 놓는 도올 강의의 대중적 카리스마는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다른 시각의 비평도 많았지만 고답적 지식의 창고 안에 갇혔던 도가와 유가의 사상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그의 수난은 TV라는 대중적 권력매체와 결합하면서 시작된다. 권력을 획득한 자를 그냥 내버려 둘 세상이 아니다. 지식사회가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도올의 언행과 강의 태도까지 맹렬한 물어뜯기를 시작하자 대표주자들이 갑자기 신문지면을 통해 뜨기 시작했다. 하긴 센 자 물어뜯기에 편승해 같이 뜨는 것도 신문이기 때문에 이 물어뜯기 경쟁에 가담하지 않은 미디어도 없었을 것이다.

도올을 폄훼해 얻어지는 것은 별반 노력 없이도 그가 획득한 권력 위로 물타기해서 올라가 손쉽게 누리는 또 다른 맛의 권력이 아닌가 싶다. 일본의 역사학자 미야자키가 쓴 『옹정제』를 읽다보면 옛 중국의 지식인들도 이런 물타기 권력의 맛을 꽤나 즐긴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봉건제도의 관료란 문인 출신이 대부분인데 황제 재위기간 중 올렸던 주접(奏摺)을 모아 황제 사후에 문집을 내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실속없는 내용으로 황제에게 야단 맞은 답신은 뺀 채 자신의 미문과 직간 부분만 유리하게 편집해 출판한다는 점이다. '내가 힘센 황제에게 이렇게 직간했다' 만 자랑삼았다는 뜻이다.

이 경우 세간의 존경을 받고 강직한 문인으로 사당에 봉정돼 후세의 추모까지 얻어냈다고 하니 센 자 물기의 승수효과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지금 안방 드라마에서도 지식인이 뜰 수 있는 비장의 비법을 전수시켜주고 있는 판국이니 우리 사회의 센 자 물어뜯기의 열풍을 짐작하게 해준다.

도올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현직 대통령을 향한 공업용 미싱 발언파문을 일으킨 모 의원도 일관되게 센 자를 물어뜯어 뜬(?) 케이스다.

***패싸움式 비판은 자제를

모 인터넷신문이 지난 몇년간 오직 DJ 한사람만 일관되게 편파적으로 비판했다고 분석한 모 언론사의 유명 칼럼니스트의 칼럼도 비판이었다기보다 혹시 뜨기 위한 물어뜯기의 수준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문화계.재계도 예외는 아니지만 정치판의 물어뜯기 수준은 정화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여야 할 것 없이 누가 권력을 향해 근접해가는 모습만 보면 지성인다운 비판의식은 온데 간데 없고 패싸움 수준의 물어뜯기로 일관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더 심각한 일은 세상사람들조차 이런 지식사회의 선동에 휩쓸려 병리적 현상에 가까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함께 몸을 떤다는 사실이다. 이제 물어뜯어야 뜨는 지식사회의 이러한 해악적 풍토가 온나라를 그르칠까 염려스럽다.

물론 센 자도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 그러나 물어뜯는 것은 비판이 아니다. 드라마 '아줌마' 대사에 담긴 함축적 풍자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홍사종<숙명여대 교수·문화관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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