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게임 속 아동 성 묘사 그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일본의 수도 도쿄도(都)가 만화나 게임 등에 등장하는 미성년자의 성(性) 묘사에 철퇴를 가하고 나섰다. 도쿄도는 15일 어린이·청소년들의 성 묘사 장면이 그려진 만화와 게임·애니메이션 작품들을 미성년자들에게 팔지도 보여주지도 못하도록 하는 청소년 건전육성조례 개정안을 마련, 도의회에 제출했다.

실제 미성년자의 나체나 성행위 장면이 나오는 작품에 대해서는 아동매춘·포르노금지법 등을 적용해 규제하고 있으나 게임이나 만화 캐릭터를 규제대상으로 명기한 법률이나 조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개정안은 ‘비실존 청소년’이라는 용어를 도입, 만화와 애니메이션·게임의 등장 캐릭터를 규제대상으로 명시했다. 제3자로 구성될 도쿄도 심의회는 아동 강간 등 노골적인 성 묘사가 등장하는 만화 등을 ‘불건전 도서’로 지정하고 이들 작품을 18세 미만 미성년자에게는 팔거나 보여주지 않도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위반하면 30만 엔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시행 시기는 10월로 잡고 있다.

개정안에는 포르노가 아니더라도 13세 미만 어린이의 선정적인 사진을 취급한 책과 인터넷 유해 사이트 열람 규제를 강화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번 조례 개정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郎) 도쿄도 지사가 1999년 지사 취임 후 추진하고 있는 치안·청소년 보호 대책의 일환이다. 이시하라 지사는 개정안에 대해 “아동 포르노 범람을 비롯해 청소년을 성 대상으로 취급하는 풍조를 그냥 넘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어린 학생들이 즐겨 보는 만화에 또래 학생들이 부모·교사 등과 성관계를 갖거나 강간당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2007년 내각부 여론조사 결과 86.5%가 실존하지 않는 미성년자의 성행위를 그린 만화를 규제해야 한다고 답한 여론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도쿄도는 “사회규범을 현저히 벗어난 표현만 규제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만화·출판업계는 발끈하고 나섰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만화가·출판노조연합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안에 반대하도록 요구하는 요청문을 도의회에 제출했다. 반면 도쿄도 초등학교 보호자·교사협의회는 “눈을 가리고 싶어질 정도의 만화가 서점에 버젓이 놓여 있는 게 현실”이라며 도의회를 압박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