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우리법연구회는 대법 윤리위 경고 경청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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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법관의 단체 활동에 대해 권고 의견을 냈다. 핵심 주문은 정치적이거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활동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외형상 그렇게 비쳐서도 안 된다고 했다. 요컨대 단체 활동보다 법관의 의무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윤리위의 이번 권고는 잇따른 편향 판결 논란과 튀는 집단행동이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작금의 사태와 관련, 자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비록 ‘권고’의 형식을 취했지만 일탈한 법관들에게 대한 ‘경고’요, 특히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엄중한 판단이라고 본다.

윤리위의 권고는 법관의 ‘의무’와 ‘양심’의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첫째로 단체 활동의 자유에 앞서는 법관의 의무다. 대법관 퇴진운동을 벌이거나 법관 인사권 참여에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공정한 판결로 정의를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법관의 자세에 대한 일반론적 지침이겠지만 누구보다 우리법연구회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라고 여겨진다. 이 단체는 ‘법원을 이상적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명분 아래 사실상 세력화했고, 편향 판결 논란의 진원지(震源地)가 돼왔다.

윤리위가 정치성과 편향성을 경계하고, 대중적 논쟁에도 참여하지 말라고 한 부분도 그렇다. 판사 일반에 해당되는 내용이면서 또한 우리법연구회를 주목하게 된다.

연구회 회원은 논문에서 “아메리카의 53번째 주…”라며 반미감정을 드러냈다. 친일진상규명특별법에 대해서는 “피 묻은 손…” 운운하며 반(反)법치주의를 부추겼다. 최근에는 블로그를 통해 연구회 해체 주장에 격렬하게 반발했다. 바로 이런 행위들을 지적한 것이다.

물론 법관에게도 단체 활동의 자유가 있다. 법원 내 학술단체도 필요하다. 자유로운 토론과 고민을 통해 시대적 변화를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법도 생명력을 가진다. 하지만 윤리위가 지적했듯이 조직의 폐쇄성과 상호호혜는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다수 회원이 지지하는 대법원장이 취임하셨다”거나 “주류 일원으로 편입됐다”고 감격하는 식의 패거리 문화는 결국 ‘불편부당(不偏不黨)’이라는 사법의 토대를 침식(浸蝕)하는 것이다.

본지는 우리법연구회에 자진 해체를 권고한 바 있다. 사법부 내 이념적 갈등과 파벌적 행태가 외부로 표출됨으로써 사회적 물의를 야기했고 결과적으로 사법부의 신뢰에 심대한 흠집을 초래한 책임을 지적한 것이다. 자유와 권리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대법 윤리위도 ‘직책의 특수성으로 법관의 자유에 일정한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우리법연구회는 윤리위 권고를 새겨듣고 진취적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

현재 대법원은 법원 내 이런 저런 200여 단체에 대해 조사 중이다. 이번에 대법 윤리위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만큼 그에 부합하지 않은 단체는 차제에 말끔히 정비해야 한다. 그것이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