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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사랑 주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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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예부터 친구에 대한 고사(故事)와 정의는 숱하다. 그중 최고의 단계는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 즉 지기(知己)가 아닐까 싶다. 당나라 시인 왕발(王勃)은 그의 시(詩)에서 “세상 곳곳에 절친한 친구(知己)를 두었다면, 천하가 모두 이웃과 다름없을 것(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이라고 했다. 친구, 특히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기대를 담고 있다.

지기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는 대표적 고사는 지음(知音)이다. 열자(列子) 탕문(湯問)편에 나오는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와 그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한 친구 종자기(鍾子期) 사이의 얘기다. 백아가 산울림을 표현하고자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높은 산이 눈앞에 나타나 있구나”라고 했고, 백아가 강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 눈앞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고 감탄했다. 자기의 뜻을 알아주는 참다운 친구를 지음이라고 한 연유다. 백아는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를 부수고 더 이상 연주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 관중도 포숙을 가리켜 “나를 낳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아는 것은 오직 포숙뿐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고 했다. 이 또한 지기의 경지에 이른 친구 관계라 할 만하다. 지기라는 말엔 죽음을 무릅쓴다는 비장한 의미도 담겨 있다. 중국 진나라의 예양(豫讓)은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건다(士爲知己者死)”며 이를 실천하다 죽었다고 사마천의 사기(史記)가 전한다. 물론 이 대목의 지기는 친구 사이가 아니라 주군과 신하 관계다. 그러나 친구 사이라고 다를 게 없다. 생사를 같이할 만큼 친밀한 친구 관계를 뜻하는 문경지교(刎頸之交)란 고사도 있지 않은가. 오죽하면 중국 사람들이 “국가를 위해서는 못 죽어도 친구를 위해선 죽을 수 있다”고 했을까. 성서에도 ‘친구를 위해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복음)는 가르침이 있는 게 우연은 아닐 게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이번 주(15~20일)를 ‘친구 사랑 주간’으로 지정했다. 친구 사랑 글짓기 등 학생들이 서로 우정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운영된다고 한다. 학교 내 따돌림·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라지만 학생들 우정 맺기에 정부까지 나서야 하는 세태가 씁쓸하다. 그렇게 해서라도 평생을 함께할 지기를 얻게 한다면 다행이겠지만 말이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