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읽기] 순도 100% 오락성 추구 '세 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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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성인시트콤 '세 친구' 를 '무사히' 끝내고 배낭여행을 떠나는 송창의 PD의 표정이 매우 밝아 보였다. 인기비결에 대해 그는 "운이 좋았다" 고 담담히 말했다. 운이라는 게 시간.공간.인간이 서로 충돌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하기야 시청자도, 모니터의 시선도 많이 너그러워진 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그에게 빚진 부분이 많다. 딱 10년 전 나는 그가 맡고 있던 '일요일 일요일밤에' 라는 프로그램을 넘겨받았다. 당시 방송사보 편집자는 그와 내가 오락프로그램 연출관에 대해 대담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꽤 많은 지면이 할애된 그 논쟁에서 그는 철저한 오락, 철저한 재미가 있는 순도 1백%를 담고 싶어 하는 현실론자로, 나는 오락과 재미 속에 정제된 웃음과 메시지를 담고 싶어 하는 이상주의자로 기록됐다.

10년이 지나 그는 독립프로덕션으로, 나는 대학으로 각자 방송사를 떠났다. 지금 돌아보니 그는 그 때나 지금이나 오락에 대한 확실한 철학과 입장을 지닌 데 반해 나는 여전히 어정쩡하게 오락과 교양에 한 발씩 슬쩍 걸치고 있다.

그는 방송위원회에 가장 자주 불려간 PD 중 한 사람인 데 반해 나는 대리출석은 있었지만 스스로 연출한 프로그램의 잘못(□)으로 불려간 적은 없다. 가끔 그를 장난삼아 양심수라고 부르곤 했다. 확실하게 재미만 있다면 앞뒤 눈치 안보고 추진하기 때문이다.

'웃음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자존심을 높여주며 행복감을 증가시킨다' 는 보고서를 본 기억이 있다.

오락전문 PD 모두 현실론자가 돼서도 곤란하고 반대로 이상주의자로 남아서도 세상은 재미없을 듯하다. 백화제방이 좋다. 다만 독초를 가려내는 일만 꽃밭 안팎에서 멈추지 않으면 된다.

학교는 3월과 9월이 개학이지만 방송사는 4월과 10월이 개학(개편)이다. 잔치에 비유해 보자. 10대만을 위한 인스턴트 식품이 주류를 이루면 어떤가. 어른도 아이도 남자도 여자도 먹을 게 있는 상을 마련하자.

데스크는 PD들에게 "무조건 이겨라" 고 강요하지 말자. 즐거운 경쟁은 창의력으로 승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 재미있는 프로를 만들도록 그들에게 휴식과 여유를 주자. 그가 배낭여행에서 돌아와 가방에서 꺼낼 시청자 선물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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