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화은 '옛날에 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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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옛날 옛날 금간 유리창 위에

무궁화 꽃잎을 색종이로 곱게

오려붙였습니다.

비행기나 기차도 나란히 붙였습니다.

유리의 상처에는 언제나

꿈 같은 것들이 씽씽 달리고

꽃이 피고

꽃밭보다 더 예쁜

꽃 향내가 배추 흰 나비로 날았습니다.

깨진 것 금간 것들을 그 때는 아무도

섣불리, 쉽게, 갈아 끼우지 않았습니다.

옛날 옛날엔

사랑하는 사람들 책갈피에

색색깔깔 참 많은 색종이들이

언제나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 이화은(1946~ )의 '옛날에 관하여'

유리창에 금이 가면 선생님께서는 정성스럽게 화선지를 오려서 그것을 붙이시곤 했다. 별.나비.꽃 모양으로…. 공부하다 지쳐 문득 창을 내다 볼 때 그 깜찍한 화선지의 모자이크는 얼마나 풍부한 상상력과 아름다움을 제공해 주었던 것일까.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깨진 유리창이란 갈아버리면 되니까. 약한 것에 대한, 깨진 것에 대한, 상처난 것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 오늘의 현실이 슬프기만 하다.

오세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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