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스테이지] 무대감독 이상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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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약속시간을 훨씬 넘기고 인터뷰 장소인 콘서트홀 로비에 나타난 이상은(27.예술의전당 무대기술팀)씨의 손에는 커다란 노트와 무전기가 들려 있었다. 그래서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13일 자유소극장에서 막이 오르는 창작 뮤지컬 '더 플레이' 의 무대작업을 지원하고 감독하느라 며칠째 계속 야근이다. 이번 작업이 끝나면 19일 토월극장에서 개막하는 '교황청의 지하도' 작업에 매달려야 한다. 인터뷰 도중에도 계속 휴대폰이 울렸고, 그 때마다 "회의 중입니다" "저녁 식사 중입니다" 라고 둘러댔다.

지난해말까지 음악당 무대감독으로 활약했던 그는 지금은 오페라하우스로 '주무대' 를 옮겼다. 그는 계원조형예술대 공간연출디자인과에서 무대디자인을 전공하고 1996년 예술의전당에 공채 5기로 입사한 '여성 무대감독 1호' 다. 어릴 때부터 영화 세트에 관심이 많아 무대 쪽을 택했다.

지난해 상명대 공연학부 연극전공 3학년에 편입, 연출.연기와 이론 공부를 하고 있다. 현재 4학년이지만 수강 과목이 많아 거의 매일 수업을 듣는다.

무대감독이란 무대설치는 물론 리허설.공연 등 모든 과정을 백스테이지에서 책임지는 사람이다. 대관공연의 경우 외부단체에서 스태프를 데려오지만 극장 사정을 잘 몰라 공연장 소속 무대감독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무대에서 퇴장한 아티스트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도 무대감독의 몫이다. "간혹 아무 연락도 없이 리허설 시간에 늦는 연주자도 있어요. 점심시간에 무대연습을 진행하는 것도 다반사고요. "

'주독야경(晝讀夜耕)' 이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한 달에 이틀 정도나 쉴까. 그래도 입사 이래 한번도 결근해 본 적이 없다고 자랑한다. 튼튼한 체력은 무대감독의 필수조건.

경우에 따라서는 오케스트라의 관악기.타악기 주자들이 앉는 대형 덧마루를 나르기도 한다. 성악가.바이올리니스트.피아니스트가 번갈아 가면서 무대에 나오는 공연에는 그 무거운 스타인웨이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해야 한다. 모두 36번이나 여닫은 공연도 있었다.

청소년음악회를 진행할 때는 지휘자 금난새씨가 갑자기 무대로 불러내 박수를 받은 적도 있지만 스포트라이트와는 언제나 거리가 멀다.

"아침에 예쁘게 화장하고 치마 입고 출근하는 제 또래 여성들을 보면서 솔직히 부러울 때도 많죠. 공연은 물론 리허설 때도 제 복장은 언제나 검정색 셔츠와 검정색 바지이거든요. "

리허설 때라도 색깔이 있는 옷을 입고 있으면 조명을 받을 때 튀어 연습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무대감독의 필수품은 무전기.휴대폰.플래시.볼펜.메모지.망치 등이다. 마루 바닥에 못이 튀어나왔으면 달려가서 망치질도 해야 한다.

"처음엔 여자가 무대진행을 하느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중엔 어떻게 하면 무대감독이 될 수 있느냐고 물어 오는 청소년들이 많아졌어요. 힘들긴 하지만 공연을 매끄럽게 성공적으로 끝낸 후 연주자들로부터 '고맙다' 는 인사를 받을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

글.사진〓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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