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 길라잡이] 오스카 와일드 『행복한 왕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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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창작 동화는 옛이야기에 젖줄을 대고 있다. 소년 소설은 이미 성립한 소설의 갈래에서 나온 것이라 이와 조금 구별된다. 소설은 가공된 다른 사람의 경험을 독자가 자기 경험에 비추어 혼자 힘으로 차근차근 밟아가는 구조지만, 현실의 경험이랄 게 거의 없는 어린이 상대의 동화는 독자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이야기꾼의 안내를 받아 낯선 세계로의 여행을 마음껏 즐기는 구조다.

동화의 세계는 대개 어린이의 심리를 닮아서 현실과 초현실이 뒤섞인 공상으로 이뤄진다. 어떤 이는 임금님이니 공주님이니 하는 시대착오성과 거인이니 난쟁이니 하는 비현실성을 들어 동화의 공상적 요소를 비판하려 드는데, 작품의 질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비판은 연령에 따른 어린이의 심리 특성을 무시하는 발언이기 쉽다.

동화는 어린이가 얼른 이해하기 쉽도록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단순화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 단순성에 바탕한 과장의 결과가 임금님이니 공주님이니 혹은 거인이니 난쟁이니 하는 비범한 캐릭터로 나타나는 것이다.

자기 인생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삼고자 했던 오스카 와일드도 옛이야기의 특성에 기대어 아이들에게 오래 사랑받는 명작 동화를 만들어냈다.

예컨대 '욕심쟁이 거인' 이란 작품은 뛰노는 아이들을 내쫓고 난 뒤 겨울만 계속되던 거인의 정원에 어느날 아이들이 몰래 기어들어오자 그와 함께 봄이 다시 찾아오고 마침내 거인의 마음까지 녹아 내렸다는 멋진 공상의 이야기다.

그런데 당시의 지배질서에 환멸을 느낀 와일드는 그의 동화에 자기 시대의 문제를 날카롭게 드러내는 풍자성을 아울러 새겨넣었다.

궁전 밖 동상이 되고서야 비로소 도시의 온갖 추하고 비참한 생활을 볼 수 있었던 '행복한 왕자' , 서민 아이들의 참혹한 노동과 노예적인 삶에 눈을 뜨고 타락한 귀족과 맞서 거듭나는 '어린 임금님' 의 이야기 등이 그러하다.

와일드의 창작 동화 아홉 편을 전부 번역해 묶어낸 『행복한 왕자』(지혜연 옮김. 시공주니어)를 다시 보니, 19세기 산물인 데도 낡은 가치관은 찾아볼 수 없고, 풍부한 공상의 힘으로 인간의 착한 심성에 호소하며 새로운 시대윤리를 추구하는 '현대성' 이 돋보인다. 창작 동화는 소설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이야기 형식이되, 옛이야기의 단순 되풀이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원종찬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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