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빚기 '5대 가업' 잇는 신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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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무형문화재(86호)인 전통술 문배주의 5대 전수자 이승용(29.사진)씨는 신문기자와 외국연수 등의 짧은 사회적응 기간을 마치고 최근 가업으로 돌아왔다. 그는 고조모.증조부.조부.부친 이기춘(62.문배주 사장)씨로 이어지는 문배주 가업의 전수자다.

이씨는 이달 중순 일본에서 열린 국제식품박람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가업 복귀'를 신고했다.

"시음용으로 가져간 문배주 100병이 행사 초반에 모두 동났어요. 희석 소주에 이어 우리 전통주도 일본 열도를 석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대학 3년까지 5년 동안 문배주 제조법을 배워 전수자가 됐다. 문배주 전수자답게 그는 인터뷰 내내 술 이야기만 했다. 대학 졸업 후 신문기자 등으로 3년여간 다른 길을 걸었던 것도 술을 더 잘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세상살이와 사람을 알아야 좋은 술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외로 아버지도 흔쾌히 허락해주셨죠. 2년간이란 단서조항을 달기는 했지만요."

그는 약속대로 2년간 영자신문(코리아타임스)에서 일하면서 "거센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전통주가 살아남는 길은 오직 세계화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곧바로 미국 어학연수를 떠났다. 문배주의 세계화를 위해 필요한 어학능력과 국제감각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미국에선 영어 공부뿐 아니라 미국인의 음주문화도 열심히 연구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칵테일이나 온더락 주법을 개발하면 미국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 3월 귀국한 그는 요즘 문배주의 병 디자인을 바꾸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문배주 세계화를 위해 우선 CI(기업이미지)개선 작업부터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술에 대한 철학만은 할아버지의 말씀을 새겨두고 있다.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술맛이 안 난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 3년 때 전수자가 된 뒤 농촌활동을 가서 쌀과 누룩으로 막걸리를 만들었는데, 마을사람이 무척 맛있게 마시는 걸 보면서 '이게 진리구나'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문배주.교동법주와 함께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두견주의 전통이 끊긴 것이 너무 아쉽다"며 "선대의 '손맛'을 현대적 기법으로 승화해 문배주를 세계의 명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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