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대납 부도생계비 강제환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정부가 저소득층 부모에게 생계비를 준 뒤 부양능력이 있는 자식이 있음이 확인되자 생계비를 강제로 환수키로 한 조치는 '부모는 자식이 당연히 돌봐야 한다' 는 우리 사회의 효(孝)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유가 어떻든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지 않을 경우 강제로라도 부모 생계비를 부담하도록 해 '현대판 고려장' 을 방지하겠다는 뜻이다.

기초생활보장법의 입법에 관여했던 보건사회연구원 김미곤 부연구위원은 "입법 당시 '부당 비용' (국가 대납분)환수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지만 우리의 동양적인 유교 정서를 고려해 부모 부양 의무를 법으로라도 강제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고 말했다.

◇ 강제 환수의 예〓강제 환수를 처음 시행한 경기도 평택시는 혼자 사는 노모(72)의 네 딸 중 두명은 10만~15만원 가량의 생활비를 부정기적으로 노모에게 보조해 왔다는 점을 인정, 부양 의무를 다한 것으로 판정했다. 한명은 생활이 어려워 면제했다.

그러나 나머지 한명의 딸이 월 3백만원 가량의 소득을 올리는데도 생활비를 보조하지 않아 정부가 지급해 온 월 12만3천원의 생계비를 강제 징수했다.

이번에 평택시에서 강제 징수 고지서를 보낸 19가구의 경우 부모들이 대부분 1~2인 가구라 '부당 비용' 은 월 20만원 안팎이 많았다.

◇ 자식들의 변〓평택시에서 강제 환수 통보를 받은 사람 중 대부분은 부모가 일찍이 이혼했기 때문에 자라면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으므로 이제 와서 부모를 부양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릴 때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구타해 관계를 끊었다" 고 했다. 다른 사람은 "나는 배다른 자식인데 왜 내게 책임을 묻느냐" 고 항변했다는 게 평택시 관계자의 전언이다.

평택시 사회과 김승종씨는 "여러명의 자식 가운데 대개 형편이 어려운 자식이 부모에게 월 5만~10만원을 보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 말했다. 평택시는 당초 부당 비용 환수 대상으로 29명을 선정했으나 강제 징수하기 전에 법의 취지를 설명한 결과 10명은 생계비를 정기적으로 부모에게 지급하겠다고 해 강제 환수하지 않았다.

◇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자식의 규모〓보건복지부는 1차 조사 결과 2백명으로 집계했지만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부당 비용 징수 절차가 까다롭고 상당한 행정 수요를 유발해 현재의 지자체 인력으로는 빠짐없이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일선 지자체의 사회복지사들은 기초생활 관련 민원을 처리하는 데다 각종 민원 업무를 같이 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대상자를 찾아낼 만한 여건이 아니어서 타 시.도의 추이를 관망하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복지부 생활보호과 노홍인 사무관은 "평택시의 사례가 알려지면 타 시.도에서 대상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내 부당 비용을 징수할 것" 이라고 말했다. 다만 군에 입대했거나 해외로 이주한 자식은 부양능력이 있다고 해도 강제 환수하지 않고 국가가 생계비를 지급한다.

신성식 기자

<기초생활보장제도>

가족의 부양을 못 받고 소득과 재산이 일정 기준 이하인 저소득층의 최저 생활을 국가가 보장해 주는 제도. 소득이 없으면 4인 가족 기준으로 최고 월 84만2천원의 생계비를 현금으로 받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