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혹시 '공포증' 환자일까?

생물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K군(20)은 말 못할 고민이 있다. 쥐가 무서워 제대로 실험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쥐를 보면 이유없이 떨리고 불안해 만지기는커녕 쥐가 가까이 다가오면 기절할 것 같은 공포감에 시달린다.

회사원 L씨(32)는 남 앞에만 가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애를 먹고 있다. 회의 석상에서 발표라도 있을 땐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야 겨우 마음이 놓인다. 처음엔 직장생활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사람이 많이 모인 지하철이나 레스토랑.영화관에서조차 가는 것이 두렵다.

공포증(phobia)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숨기고 지냈던 괴상한 성격으로 이해되던 것이 최근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으로 공인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만 5천만명이 평생 한번 이상 크고 작은 공포증을 경험할 정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신호 커버스토리로 공포증을 집중분석했다.

공포증의 최근 추세는 공포를 느끼는 대상이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 과거 고소(高所)공포증.대인(對人)공포증.폐소(閉所)공포증.광장(廣場)공포증 등 정형화한 타입에서 쥐.거미.마늘.엘리베이터.뱀.지진.비행기 여행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타임은 현재 공포증을 유발하는 대상이 5백여가지나 된다고 밝혔다. 러시아 사람을 보면 불안해 한다거나(러시아공포증) 갑자기 발기가 될까 두려워 하는(발기공포증)등 복잡미묘한 양상을 띤다는 것.

공포증 환자의 공통점은 이들 모두 자신의 공포가 근거없다는 점을 이성적으로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면 공포와 불안에 시달린다. 백과사전에 나온 뱀 사진만 보아도 기절초풍하는 뱀 공포증 환자가 대표적 사례다.

과학은 공포증을 진화론의 산물로 해석한다. 원시시대 공룡을 두려워하는 본능을 대뇌 속에 축적한 동물일수록 생존하는데 유리했고, 이것이 진화과정에도 지워지지 않고 인간의 대뇌 속에 남은 것으로 본다. 공포증의 주된 대상에 뱀.악어 등 파충류가 유독 많은 것이 그 증거다. 여기에 교통사고 등 현대 문명의 이기에서 비롯된 각종 사고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근거없는 공포심을 부추긴다.

중요한 것은 공포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 치료의 핵심은 일부러 공포를 유발하는 대상에 환자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종의 인지치료다. 쥐 공포증의 경우 처음엔 쥐의 사진을 보다가 익숙해지면 쥐와 가까운 거리에 수분 동안 있고 나중엔 쥐에게 먹이를 주거나 만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처음부터 고강도의 자극을 가하는 방식도 있다. 바로 쥐와 접촉하도록 하는 것이다.

환자는 일순간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지만 이내 자신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공포심에서 벗어나게 된다.

엉겅퀴 줄기의 잔가시를 손으로 살살 만지면 아프지만 한꺼번에 꽉 잡으면 아프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어느 쪽을 택할지는 정신과 의사의 판단에 달려 있다.

백상신경정신과 강희찬원장은 "1주일에 한 번 꼴로 3~4개월 동안 외래를 찾아 상담을 통한 인지치료를 받으면 대부분 치료가 가능하다" 고 강조했다. 심할 경우 항불안제나 항우울제 등 약물치료도 가능하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최근 항우울제인 팍실을 대인공포증 환자에게 처방토록 승인했다.

홍혜걸 기자.의사

<공포증 자가진단>

1.다른 사람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대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포나 불안감을 느낀 적이 있다

2.대상을 직접 보지 않고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차며 머리가 아프고 무릎에 힘이 빠지며,입이 마르는 증상이 나타난다

3.백화점이나 극장·레스토랑 등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가면 불안해진다

4.당신이 비합리적인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음을 다른 사람들이 알까봐 초조하다

5.동료없이 혼자 여행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6.공포증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7.두려움을 주는 대상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생활습관을 바꾼 적이 있다

8.공포증으로 직장이나 가정·학교생활에 지장을 초래한 적이 있다

이중 한가지라도 '그렇다'라고 답하면 공포증을 가지고 있거나 공포증에 걸릴 소인이 있다

자료=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