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권력 '룰' 부터 개혁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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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정부의 언론사 조사를 국제사회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민주주의 감시기구인 프리덤 하우스(FH)는 지난해 한국언론 통제수준을 27점으로 평가하면서 관리들이 '교묘한(subtle)' 형태로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을 설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한국 언론통제 몇점일까

북한처럼 완전통제국가는 1백점이며 30점이 넘으면 언론자유가 제한받는 나라로 분류되니 한국은 겨우 위험수준을 벗어난 셈이다. FH가 곧 내놓을 2001년 보고서에서는 언론 '설득' 차원을 넘는 세무조사.신문고시제.언론인 계좌추적 논란 등으로 한국의 언론통제가 30점을 훨씬 상회할 것이다. 이같은 민주화 역조현상으로 한국은 특별분석 사례가 될 수도 있다.

미 국무부도 지난해 한국정부는 언론에 대한 직접 통제는 포기했으나 간접적 영향력은 계속 행사하고 있으며 기자와 편집인들에 대해 격렬하게 로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올해의 세무조사 등 일련의 조치들은 강도 높은 언론통제로 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갈등조짐을 보이고 있는 한.미관계는 언론문제까지 가세해 더욱 불편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 하원국제위원장 크리스토퍼 스미스를 비롯한 3명의 의원들은 한국정부의 '언론자유 훼손' 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국제언론인협회(IPI)도 DJ 정부의 언론정책을 주목하고 있다.

국제기구들도 우리 언론의 문제점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권위주의 체제가 민주화하면 언론이 곧 달라지듯 정치권력의 게임규칙들이 공정해야 언론도 개선된다는 점을 중시한다. 선진자본주의에서도 민영언론의 권력비판과 이윤추구 간에는 긴장과 모순이 존재한다. 뉴욕 타임스 같은 권위지도 독과점 영리조직으로서 진보적이기보다 자본주의 이념을 주입해 대중의 사상을 통제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제3세계의 민간언론은 더욱 심각한 딜레마에 봉착한다. 그들은 불공정한 권력게임 판에서 생존을 위한 두가지 상호 모순된 선택을 강요받는다. 이윤을 통해 서비스 경쟁을 해야 살기 때문에 불공정한 게임규칙들과 타협하게 만드는 압력과 유혹을 끊임없이 받게 된다. 그러나 불공정 규칙들을 비판하지 않고선 언론이 생존할 수 없다. 정치학자 헤럴드 래스월의 지적처럼 언론의 환경감시란 자기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언론이 '위선자 이미지' 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정권의 게임 룰의 공정성이 사회전반에 가치와 규범으로 확산.정착돼야 한다. 규제개혁위원회가 신문고시안에 제동을 건 것은 '공정거래' 라는 이름의 권력조직이 실은 '불공정' 을 범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사례다. 해외 분석가들은 한국 정치판의 변칙들에 어리둥절해한다. 그들은 예컨대 천문학적 '정치자금' 이 도대체 뭐냐고 묻는다.

거액의 검은 돈이 오간 사실이 드러나도 '조건 없는' 정치자금이거나 관련법 개정 이전의 일이면 수사대상에서 조차 제외되는 것은 또 무슨 규칙이냐는 것이다.

사회사상가 시드니 후크도 지적했듯이 민주주의란 상대적으로 최선의 제도일 뿐 결함도 많다. 언론도 민주주의 제도의 일부로서 결점을 갖게 마련이다.

*** 비판 수용해야 정치발전

민주정치란 비판을 수용해 자기를 수정해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부패보다 언론통제가 훨씬 더 무서운 민주주의 위협요소로 간주된다. 언론의 비판을 억누르면 개혁은 불가능해지고 권력과 언론 모두 패자가 된다. 언론이 정권의 게임 룰을 비판하면 언론 자신의 룰도 비판하는 셈이 되며, 결국 정치와 언론이 함께 개혁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래서 개혁에는 순서가 있고 시간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주먹구구식 접근은 재앙을 초래한다. 예컨대 정부의 의료개혁에 대해 많은 국민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들의 작품' 이라며 허탈해하고 있다. 그러나 권력은 이런 실정(失政)등에 대한 언론비판을 통제하고픈 충동에 항상 사로잡힌다.

언론은 보도의 공정성부터 '무관제왕' 의 품위문제에 이르기까지 냉철한 자기성찰을 해야 할 때다. 그러나 먼저 개혁돼야 할 정권이 언론의 약점을 잡아 반성을 강요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의 압력으로 보여질 뿐이다. 언론이 부자유한 나라는 발전하지 못한다. 그래서 비판수용에 인색한 정권은 제 수명을 단축하게 되는 것이다.

안영섭 <명지대 교수.정치 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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