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미·중 공중충돌의 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미국과 중국 같은 강대국의 관계가 긴장돼도 괜찮은 시기 따위는 없다. 그러나 최첨단 장비를 갖춘 미국 해군 정찰기와 중국 공군 전투기가 공중 충돌한 사건은 두나라 관계가 민감한 시기에 일어났다.

부시 대통령은 중국이 반대하는 첨단무기를 대만에 팔 것인가를 3주 안에 결정한다. 대만이 사겠다는 무기에는 이지스 장비를 갖춘 구축함 4척과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들어 있다. 대만이 대륙에서 발사한 미사일을 이지스 시스템이 즉각 포착해 패트리어트 미사일로 공중에서 폭파하는 체제를 갖추면 중국의 가공할 미사일망은 무력화되고 만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후퇴를 거듭해왔다. 미국 공군기가 코소보작전 중에 베오그라드의 중국 대사관을 오폭하고, 이스라엘에서 조기경보 레이더를 수입하려던 중국의 계획이 미국의 참견으로 좌절되고, 초고속 컴퓨터를 갖겠다는 중국의 꿈은 미국의 제재에 걸려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런 일들은 중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다. 중국은 중국대로 중국계 미국인들을 간첩혐의로 억류하는 것으로 대응하면서 러시아와 함께 부시 대통령의 역점사업의 하나인 미국 본토 방어용 요격미사일 체제의 개발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외교노력을 선도해 부시 행정부의 비위를 긁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무기를 팔고, 중국의 항공 전자공학 분야의 기술개발을 돕고, 아프가니스탄의 반소(反蘇)세력을 함께 지원하고, 미국의 정보기관이 중국의 동북부에 소련군의 통신을 감청하고 핵실험을 탐지하는 정찰 포스트를 설치하던 시절과는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이던 1989년과 90년에 소련과 동유럽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져 소련에 대항하는 미.중 협력의 존재가치가 떨어지면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은 중국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기회주의적인 나라의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89년 천안문광장 사건은 두나라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클린턴의 두번째 임기 중에 미.중관계는 간신히 '전략적인 동반자' 관계로 개선됐다가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 "전략적 경쟁자" 관계로 돌아가던 중에 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공중충돌이라는 극적이고도 불행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미.중관계를 어둡게 보는 전문가들은 벌써 미국과 중국이 일으키는 신냉전을 걱정한다. 미국과 중국이 사건처리에 국내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와 중국의 군부가 합리주의적인 온건론자들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낸다면 두 나라 관계는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위협하고, 특히 남북관계가 새롭게 전개되는 한반도에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장쩌민(江澤民)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지도부가 문제의 미국 정찰기를 오래 붙들고 있으면서 최고수준으로 알려진 전자장비의 첨단기술을 알아내자는 군부의 요구를 어떻게 다스리는가에 사건처리의 방향이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 후 외교정책에서 독불장군같이 행동한다. 듣기 거북한 대북 강경발언의 연발로 결과적으로 남북화해를 방해한다. 지구 온난화 방지조약 교토의정서를 못지키겠다고 선언했다. 결정적인 동기 없이 이라크를 공격했다.

본토방어 미사일 개발에 방해가 되는 요격미사일 제한협정(ABM)을 폐지(또는 대폭 수정)하겠다고 한다. 이름하여 단독주의다. 너무 미국 중심이요, 혼자만 잘 살겠다는 신고립주의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부시 대통령의 단독주의가 이 지역 국가들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생각하는 미국의 국가이익 중심으로 정찰기 충돌사건을 해결하고 대만에 대한 첨단무기 수출문제를 결정하는 사태다. 동아시아의 군소국가들이 다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신세가 되는 것은 '노 생큐' 다.

중국이 엉뚱한 욕심을 버리고 미국의 정찰기와 승무원들을 빨리 풀어주고, 미국이 실종된 중국 전투기 조종사의 운명을 걱정하는 선에서 사건이 해결되면 오히려 두 나라 관계가 개선되는 전화위복을 기대할 수도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