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인가, 생식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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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초기의 성은 인간사회를 엮어서 가족을 형성하는 원초적 수단이며 그 자연스러운 도구였다. 그런데 성과 생식에 각기 혁명이라고 하는 문자가 붙으면서 성과 생식을 둘러싼 풍경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곽대희의 性칼럼

성과 생식이 분리되어 아기를 낳는 기계(?)였던 여성이 이제는 임신과 출산의 걱정 없이 성적 자유를 구가하는 생활이 가능해졌다. 정자와 난자를 체외에서 수정시키는 체외수정은 자연의 혜택이던 생식을 인공생식으로 전환했다.

이런 성 혁명에 큰 역할을 한 것이 다름 아닌 경구피임약의 보급이었다. 1960년대 후반은 미국에서 첫선을 보인 피임약이 피임의 주력부대로 업그레이드된 시기다. 생식혁명의 원동력이 된 체외수정은 1978년 영국에서 성공한 이래, 그런 방법에 의해 자식을 얻은 수가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에 이른다.

아기 출산을 기피하는 일본에서도 2004년, 1년 동안에 태어난 체외수정아 수가 무려 1만7000명을 넘었다고 한다. 잃은 것도 적지 않지만 성의 혁명을 통해 얻은 과실은 매우 달고 그 사이즈도 컸다. 여성이 피임약 복용으로 스스로의 의사에 의해 피임을 선택함으로써 원하지 않는 임신과 출산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자기결정의 확립은 성을 지배하는 입장에서 군림하던 남자와, 지배당하는 측의 여자의 관계를 변환시킨 모멘트로서 작용하기 시작했다. 남자에게 의존해 온 수태조절이 여성에 의해 관리되기 시작함으로써 수태생리의 독립이 선언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 혁명의 먼동이 튼 것은 1948년 미국에서 발표된 킨제이 보고서에서 점화되었다.

약 1만8000명의 미국 남성과 여성의 성 행동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얻은 데이터는 세간의 상식을 뒤엎는 적나라한 성생활, 가톨릭 교회나 신사숙녀가 그리는 금욕적 섹스하고는 전혀 다른 성의 기호나 불순한 성교가 만재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몸에 나쁘다’ ‘비도덕이다’ 등의 이유로 금지된 당시 미국 사회에서 많은 남성과 여성이 마스터베이션에 빠져있다는 예상외의 실태가 하나도 감추지 않고 투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후, 매스터즈 존슨에 의한 클리토리스 쾌락설의 대유행 등 미국은 앞서가는 성의학의 장대한 실험장이 되어 갔으며, 거기서 얻은 결실은 세계 속으로 파급되어갔다.

한편, 생식의학이나 의료의 발달은 고래로 짜여 내려온 자연생식과 반대방향을 지향하는 결과가 되었다. 체외수정을 기본으로 한 불임치료 생식보조의학은 다태임신(多胎姙娠)이라고 하는 귀자(鬼子)를 만들고, 의사는 이 필요 이상의 다태아를 감수(減數)하는 수술을 일상화하게 되었다.

물론 폐경한 여성이 아기를 낳는 기적과 같은 신비한 현상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생식의료의 연장선상에는 클론 인간의 탄생이라고 하는 역겨운 악몽도 있다. 복제인간을 만드는 이 기술은, 단 하나의 줄기세포를 만능세포로 성장시켜 장기이식에 필요한 어떤 장기, 기관으로 자기조직을 만들어낸다는 기대에 부풀게 하는 재생의술의 기술과 표리일체의 관계다.

이 재생의료는 생명과학에서 하나의 꿈이지만, 여분의 수정란을 원재료로 한다는 점에서 인간생성의 가능성을 포함해서 생명윤리라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처럼 성의 영역은 매우 넓고 또한 깊다. 이런 분야를 고찰하고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성과학은 당연히 그 행간이 넓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과학을 모호한 과학이라고 야유하는 소리도 자주 듣는다.

곽대희 비뇨기과 원장

이코노미스트 10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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