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한계 느낀 서양종교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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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종교학을 전공한 내 친구 한 명으로부터 유럽 종교의 변화하는 분위기를 긴요하게 귀동냥할 수 있었다.

교환교수로 독일로 떠나기 며칠 전 만났던 그가 들려준 얘기는 지난해 독일 뮌헨의 한 성당에서 열렸던 강연에 관한 것이었다.

이 성당의 신부는 물론 베네딕트 수도원 등 그쪽 가톨릭의 거물들이 두루 참석했고, 연단 앞자락까지 아기를 안고온 부부 등 젊은 사람들로 꽉 들어찬 그 강연은 뜻밖에도 베트남의 틱 낫 한 스님 - 국내에도 이 스님 저술이 두 권 나왔다 - 의 설법이었다.

'성당 안 설법' 자체는 유럽에서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모양새 자체가 탄력적인 '종교 공존' 의 분위기와 함께 신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교회의 위기' 를 동시에 보여준다. 어쨌거나 진지한 설법 두 시간 뒤 신부가 했다는 인사말이 재미있다.

"다음번 미사 때 오늘같이 많은 분들이 성당을 찾아주셨으면 고맙겠다. " 그 말 끝에 여기저기 웃음바다가 됐다는 분위기까지 전한 그 친구가 내게 불쑥 물었다. "유럽에서 인기있는 종교 지도자가 누구일 것 같은가. 교황? 천만에. 내가 알기에는 달라이 라마야. "

그렇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다. 서구사회의 존경받는 영적 스승으로 달라이 라마, 틱 낫 한 스님 외에 캄보디아의 마하 고사난다 스님 등이 거명된다.

특히 한국의 숭산 스님 - 하버드대 출신으로 최근 신간 『선의 나침반』(열림원)을 펴낸 현각(賢覺)의 스승 - 도 지명도가 높다.

이같이 전례가 없는 동양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서구의 열광은 지구촌 종교지도가 바뀌고 있는 상황을 증언한다. 대신 서구 교회의 노쇠화 내지 썰물현상은 심각할 정도다. 1970년대 이후 사제.목사 등 목회자 지망자가 줄어 고민이라는 것도 상식이다.

신간 『수운과 화이트헤드』(34면에 리뷰기사)에서도 똑같은 지적이 나왔다. 저자인 철학자 김상일 교수는 『이코노미스트』지 99년 12월 23일자 밀레니엄 특집을 인용하고 있다.

"한때 유럽과 동의어였던 기독교 신앙이 유럽에서조차 기울고 있다. 지난 천년은 유럽과 그 파생국가인 미국이 승리했다. 다음 새 천년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학술서 『수운과 화이트헤드』의 메시지란 우리 시대의 핵심사안이라고 판단한다. 즉 유럽교회의 공동화 현상에는 기독교의 인격신관에 대한 염증이 자리잡고 있고, 따라서 이걸 넘어서는 인류사적 과제를 수운(水雲)과 동학 속의 풍부한 비(非)인격신의 요소에서 재발견하려는 시도 말이다.

근대 초기 민중종교의 유산을 철저히 외면해온 국내 강단철학의 자기변신 징후라는 점도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마음은 개운치 않다. 지구촌에 거의 유례없이 초강세의 교세를 지속하고 있는 한국 기독교에서는 막상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일례로 프로축구 성남 일화의 연고지 취소 소동 말이다. 성남 지역 기독교계의 '일화 축구단 연고지 반대' 운동의 심각성은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 차원으로 다뤄질 사안이 아니다. 논란의 소지가 많겠지만, 그것은 종교간 공존에 어긋날 뿐더러 지구촌 종교문화에 둔감한 역행일 뿐이다. 답답하다.

기회가 닿는대로 기독교의 자기정체성 문제와 혁신의 문제를 최신 출판물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성찰하려 한다. 관심 바란다.

조우석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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