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를 다지자] 70. 우리말 기본어휘 정리 시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내가 재직 중인 한국외국어대학교는 24개 학과에서 27개의 외국어를 가르친다. 영어.불어 등 잘 알려진 언어도 있지만 대부분은 인도어.터키어.말레이-인도네시아어 같은 특수어들이다. 이런 언어를 가르치는 데 사전은 필수다.

따라서 이들 학과에서는 30년이 넘게 사전을 편찬해 오고 있다. 그런데 교수들은 한결 같이 "표준이 될 만한 우리말 기본어휘 목록이 정해져 있지 않아 외국어 대역어(對譯語)사전 편찬에 어려움이 많다" 고 호소한다. 목록을 정하는 데 노력의 절반 이상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나온 여러 외국어의 대역어 사전들에 사용된 한국어 낱말들을 조사해봤다. 과연 들쭉날쭉했다.

평소에 우리가 잘 쓰지도 않아 우리말인 데도 뜻을 알기 힘든 낱말이 있는가 하면, 표현이 어색한 경우도 많았다. 이런 일관성의 결여는 사전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결국 외국어 학습에 지장을 준다.

우리말 중 가장 많이 쓰이는 낱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어휘 빈도수조차 아직 조사돼 있지 않다.

사전은 본래 모국어를 배우기 위해서라기보다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먼저 편찬됐다. 서양에서 최초로 성공을 거둔 대역어 사전은 1520년에 나온 '라틴어-이탈리아어' 사전이었고 모국어의 낱말들에 대한 뜻풀이 사전은 1612년에야 나왔다.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사전도 프랑스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한불 쟈뎐' (1880)이었다.

우리말의 가장 기초적인 낱말이 무엇인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사전 편찬이 계속 겉돌 수밖에 없다. 이는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한 원인이 된다. 우리도 하루빨리 낱말의 빈도수에 따라 기본 어휘를 정해야 할 것이다.

유재원 <한국외국어대 교수.언어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