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태 “라면 끓여 먹으러 여중생집 갔다” 혐의 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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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김길태를 향해 달려들자 배치된 전경들이 시민들의 접근을 막았다. 김이 경찰서 내부로 들어서자 경찰이 차량 차단기를 내리고 시민들의 출입을 막았다. 한 남성이 김길태의 뒤로 가서 뒤통수를 때리자 그는 고개를 뒤로 돌리며 노려보기도 했다.

김은 수배 전단에 나와 있는 것처럼 회색 후드 티와 검은색 점퍼 차림이었지만 오랫동안 씻지 못한 듯 수염이 덥수룩했다. 머리카락에도 잔뜩 묻은 비듬이 오랜 도주생활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음식물을 제대로 먹지 못한 듯 수배 전단에 나와 있는 것보다 훨씬 수척한 모습이었다. 볼이 홀쭉하게 들어가 있었다.

김이 호송된 경찰서 현관에서도 소란이 이어졌다. 김길태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취재진이 몰려 포토라인이 무너졌다. 경찰서에 도착하고서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 과정에서 중심을 잃은 카메라 기자 한 명이 사다리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치기도 했다.

검거 후 한 시간여 만에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서 자신의 범행을 사실상 부인해 혀를 내두르게 했다. 김은 “여중생 이모(13)양을 아느냐” “범행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저는 모르는데요”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또 "저는 라면 끓여 먹은 거밖에 없는데요”라고 부인했다. 이와 관련, 경찰은 "숨진 이양의 시신에서 김의 DNA를 확보해 범죄 입증을 자신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그러면 왜 그동안 도망 다녔느냐’는 질문에는 “그전에 한 일(지난 1월 부산시 사상구에서 귀가하는 30대 여성을 인근 옥상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고 감금한 혐의) 때문에 도망 다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의 행적을 묻는 질문에 “빈집에서 라면만 끓여먹고 있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은 취재진이 질문하는 동안 시종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양과 유가족 등에게 사과의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앞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얼굴을 마스크나 모자로 가리지 않고 취재진에게 그대로 공개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은 검거 후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며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김의 검거와 관련, 범죄 심리·행동 분석 요원인 ‘프로파일러(Profiler)’의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부산지방청에 소속된 프로파일러들은 김길태가 이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를 때부터 그의 범죄 이력과 생활습관·성향·심리 등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경찰은 김이 교도소 수감생활을 11년이나 해 극단적 심리 불안감과 대인 기피 등 공황증세를 보인 점, 휴대전화와 운전면허가 없고 인터넷을 쓰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김이 자신의 집이나 범행 현장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아 은둔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사상구를 세 부분으로 쪼개 경찰서 1곳에 구역 한 곳씩 맡기는 식으로 대대적인 정밀 수색을 벌였고, 빌라 옥상까지 샅샅이 들여다보던 중 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찰 프로파일러는 2007년 3월 제주에서 실종됐다 40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양지승(9)양 사건 때도 범인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해 검거에 도움을 준 바 있다. 프로파일러는 김이 검거된 뒤에도 활약을 이어갈 전망이다.

경찰청은 과학수사센터의 베테랑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경위를 9일 부산의 수사본부에 파견했으며, 권 경위는 김을 조사하는 데 투입돼 그가 정확한 범행 동기와 범행 수법뿐 아니라 여죄까지 털어놓도록 하는 데 일조할 계획이다. 권 경위는 ‘혜진·예슬양 사건’으로 불린 안양 초등학생 살해사건의 범인 정성현을 비롯해 강호순·정남규 등 연쇄살인범의 여죄 자백을 이끌어내는 데 공을 세운 바 있다. 

부산=강기헌·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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