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진해 마을도서관 23곳 '확 바뀌었네!'

지난 20일 오전 10쯤 경남 창원시 봉곡동 마을도서관.

20평쯤 되는 열람실에서 주부 10여명이 이젤을 앞에 두고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채색을 하기에 바쁜 주부 金미경(35 ·창원시 봉곡동)씨 옆에는 세살짜리 딸이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다.

맞은편 열람실에는 일곱 명의 주부들이 발 맛사지 방법을 배우고 있다.주부들은 타올이 깔린 의자위에 자신의 다리를 올려놓고 크림을 바르며 맛사지를 하거나 발바닥을 지압봉으로 누른다.

옆 열람실에서는 10여명의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운다.할머니들은 초등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를 강사의 지도에 따라 더듬거리며 열심히 읽고 있었다.

이 도서관에서는 매주 월 ·금요일 이틀동안 스포츠 댄스 교실이 열리고 주부 노래교실·서예교실도 열린다.

창원 ·진해지역 23곳 마을도서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마을 도서관이라고 기존의 도서관처럼 책을 빌리거나 공부만 하는 곳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도서관의 개념이 시대의 조류에 발맞춰 바뀌고 있는 것이다.

매일 오전에는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강좌가 열리고 초·중학생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오후부터 도서관과 공부방 모습으로 돌아간다.

어린이들은 서가에서 마음대로 책을 빼내 읽거나 숙제를 하는 등 자유롭게 지낸다.옷차림도 재미있다.방금 학교에서 돌아 온 듯 책가방을 들고 온 녀석 부터 슬리퍼를 질질 끌며 들어오는 어린이도 있다.공립 도서관에서 흔히 접하는 근엄하고 딱딱한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가람이 왔나.니 어제는 와 안왔노.”

“선생님.어제는 감기 걸리가꼬 못왔심더.”

사서 아줌마가 어린이들의 특징과 가정형편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가 한마디씩 던진다.사서 아줌마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자녀를 맞는 어머니 같다.도서관 이용자들은 책 읽으며 정보를 얻고 취미교실·강좌를 통해 새로운 삶에 눈뜨고 있다.

강좌개설은 주문식으로 이뤄진다.일방적으로 주최측 사정에 따라 개설하는 강좌와는 달리 회원들이 요구에 따라 열려 내용이 다양하고 독특하다.

‘요술풍선 만들기’ ‘주물럭 찰흙나라’ 강좌는 자녀들과 재미있게 노는 법을 배우려는 주부들의 요청으로 개설됐다. 기체조,요가교실 부터 서예 ·수채화 ·바둑 ·사물놀이 등 취미와 건강강좌까지 1백여종이 개설돼 있다.

지난 20일 명곡 마을도서관에서는 ‘마을신문 제작교실’강좌도 열렸다.도서관별로 펴내는 마을 신문 제작에 참여하는 주부 기자 30여명이 참석해 金광석(38)남해신문 편집국장으로 부터 편집 ·취재기법을 배웠다.

한달 수강료는 1만5천∼3만원으로 재료비 수준.강사는 도서관 회원들 중에 자격이 있는 사람이 맡거나 자원 봉사자가 나서 비용이 저렴하다.

이같은 마을도서관이 창원·진해지역에 23곳 있다.주로 아파트 단지와 주거 밀집지역 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주부·어린이들이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민 사회단체 등에서 장소를 빌려 운영하고 있다.임대료는 대부분 무료다.아파트 단지에서는 주로 관리사무소의 빈 공간을 빌리며 주거지역에서는 동(洞)통폐합으로 비게된 동사무소 건물 등을 시에서 빌린다.일부지역에서는 기존 동사무소 건물 내 여유공간을 얻기도 한다.

마을도서관 회원이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도서관 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신간서적 한권을 도서관에 기증하거나 평생회비 5천원만 내면 된다.도서관이 개설한 강좌 수강생도 준회원으로 도서관 이용 자격이 있다.

마을도서관을 운영하는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진광현(陳光鉉)소장은 “이용자 중심의 도서관 운동을 통해 살맛나는 도시문화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목표”라며 “학교 ·교도소 ·기업체 등으로 마을도서관이 확산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 ·진해지역 마을 도서관은 타지역에서도 관심대상이다.2년 전부터 서울 성동구 ·대구 ·대전 ·광주 ·경기도 등에서 찾아와 마을 도서관 운영방법을 배워갔다.

창원전문대 梁재한(문헌정보과)교수는 마을 도서관의 성공과정을 추적한 ‘창원 도서관 성립과정에 얽힌 현상학적 접근’이라는 논문을 최근 발표하기도 했다.

창원=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그래픽=박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