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당돌…당당…그 앞날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 김승현 사회부 기자

"콘돔을 왜 남자가 준비해야 하지?"

'요즘 대학생은…' 기획 시리즈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서울의 대학생 10여명과 한 술자리.

2차로 옮긴 맥주집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한 남학생이 던진 이 말에 곧바로 논쟁이 벌어졌다.

발끈한 여대생 한명이 반박했다. 그는 "콘돔 사는 여자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선을 생각해 봤느냐"고 말했다. 남자들이 임신의 위험성을 걱정하지 않고 무책임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남학생은 "서로 합의하에 성관계는 하면서 피임을 위한 준비를 부끄러워하는 것은 이중적인 여성의 전형 아니냐"고 맞섰다. 30여분간 끈 논쟁은 '서로를 배려하자'는 절충안으로 봉합됐다.

현장에서 이들의 논쟁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문제 제기를 한 남학생을 속으로'못된 놈'이라고 단정지었었다. 그러나 당돌하지만 논리적인 남학생의 주장을 들으면서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1980, 90년대의 남자도 아니고, 폐쇄적인 성문화에 익숙한 여성을 사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2004년이고 그들은 '0'으로 시작하는 학번에, 8로 시작하는 주민번호를 가졌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운동권에 맞서는 '공부권' 학생은 스스로를 '대항하는 자유주의'라고 정의했다. 그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존중하기 때문에 남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한 대학생 창업자는 자신의 실패담을 너무도 친절하게 설명했다. '부끄럽다며 말을 안 하면 어쩌나'하며 실패 이유를 물었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는 "실패는 했지만 좋은 경험이었고, 다시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당돌하고 당당한 대학생들. 그러나 지금 그들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한결같이 취업을 걱정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일자리를 갖는 사람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 어려운 경제 현실에 적응하려고 몸부림치는 그들에게 이 사회는'예비 실업자'라는 호칭밖에 줄 수 없는 현실이다.

이번 시리즈가 우리 대학생들의 진정한 모습을 조명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그들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김승현 사회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