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요리전문가 이종임씨 고대서 박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영양소 공급에 그치지 않고 생체조절 기능을 촉진토록 가공된)기능성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합니다. 식품공학을 전공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죠. "

지난달 14일 고려대 식품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요리전문가 이종임(李鍾任.52)씨. 전임 교수가 아닌 요리전문가가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논문 주제는 '허브의 일종인 정향 추출물을 이용한 혈전예방 연구' . 1994년 박사 과정에 들어간 지 7년 만에 얻어낸 성과다.

졸업시험을 준비할 때 가장 어려운 과목은 영어였다. 전공과 일어 시험은 한 번에 통과했지만, 영어시험은 학원을 다니며 꽤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네 번만에야 합격할 수 있었다.

"학원에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공부하다 오후 10시쯤 학원 문을 나설 때면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하는 청승맞은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

논문 준비로 눈코 뜰 새 없던 지난해 12월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린 노르웨이로 가야 했다. 노르웨이 정부의 초청으로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 음악회에 마련된 뷔페 준비를 맡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준비해 간 곶감말이.강정.다식.매작과 등 전통음식을 노르웨이 왕세자와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내외 귀빈 3백50명에게 선보여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노르웨이행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것은 딸 보경(21)씨 때문이다. 통역을 위해 동행했던 보경씨가 그의 뒤를 이어 요리를 하겠다고 나선 것. 李씨가 38년째 수도요리학원을 운영해 오고 있는 어머니 하숙정 선생의 뒤를 이었으니 이제 보경씨가 이 길로 들어서면 '모녀 3대 요리전문가' 가 나오는 셈이다.

"요즘 우리 식탁은 정말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수입농산물을 비롯해 유해한 먹을거리가 너무 많죠. 또 젊은 세대는 끼니를 대충 때우면 된다고 생각해 간편한 음식만 찾아요. "

그는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은 먹는 사람의 건강을 책임져야 한다" 고 강조하며 "맛있는 음식을 잘 먹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 이라고 말했다.

학위도 받았으니 이제 한숨 돌릴 수 있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손을 내저었다.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강의 준비하랴, 지난해 문을 연 요리전문 사이트 요리조리닷컴(http://www.yorizori.com)대표로 활동하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4월부터 TV에서 요리프로를 진행하고 올해 안에 에세이집도 낼 계획" 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글〓하현옥, 사진〓안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