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마리 연어되어…' 의 치졸한 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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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에서 자민련으로 이적한 송석찬(宋錫贊)의원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보냈다는 '합당 건의 서한' 이 정가에 미묘한 파장을 던지고 있다.

특히 편지는 왕조시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구구절절 金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가득해 그 시대착오적 발상이 고소(苦笑)를 금치 못하게 한다.

"일생일대의 성업(聖業)을 위해 강을 거슬러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 알을 낳은 뒤 생을 마감하는 연어처럼 대통령님을 위한 충정 하나로 연어가 되기로 결심했다" 는 대목은 마치 정철(鄭澈)의 '사미인곡(思美人曲)' 을 연상시킨다.

우리의 민주정치는 역대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행태 때문에 뒷걸음질쳐 왔다. 어쩌면 이같은 과잉 충성 경쟁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권위주의로 흐르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 아닌가 돌아볼 일이다.

'의원 꿔주기' 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감안한다면 宋의원은 최소한 근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옳다. 그리고 어찌됐든 그는 현재 자민련 소속이다. 근신은커녕 정략적 합당론으로 정치판의 물을 흐리고, 드러내놓고 민주당원 행세를 하고 있으니 정치적 도덕성이 의심스럽다. 宋의원은 자신의 합당론에 대해 "동교동계 핵심 인사 및 민주당 지도부와 논의했다" 고까지 주장했다.

여권의 핵심 인사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합당으로 가기 위한 불씨 지피기라는 인상마저 준다. 의원 꿔주기의 꼼수정치나 착안해 내는 수준이니 그 발상들이 오죽하랴 싶으면서도 언제까지 우리 정치가 저질 정략의 농락 대상이 돼야 하는지 답답하다.

자민련의 입장도 딱하다. 네명의 의원을 임대받아 교섭단체 등록에 성공했지만 결국 그들에게 발목 잡혀 휘둘리고 있다. 자민련을 이끌고 마치 연어처럼 민주당에 귀환하겠다는 해당(害黨) 발언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게 오늘의 자민련 입장이다. 의원이 단 한명이라도 빠질 경우 교섭단체가 와해되기 때문이다.

임대 의원들은 국가보안법 개정 문제에서도 자민련 당론과 다른 입장을 보여 당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 무릇 정치가 정도(正道)를 밟지 않을 때 그 업보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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