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서 만드는 보드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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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사다리다!” “에이, 미끄럼틀이네.” “아빠! 그렇게 해서 언제 골인 지점에 도착하겠어요? 분발하세요.” 지난달 23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김지원(서울 신용산초2)양의 집에서는 가족보드게임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보드게임 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삐뚤빼뚤 뭔가 서툴고 독특하다. 가족들이 직접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양의 아버지 김성환(39)씨는 아이들과 5년째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지인에게 보드게임을 선물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무뚝뚝한 성격인 그는 주말에도 업무나 휴식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보드게임을 하면서 달라졌다. 게임을 하면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장난도 치게 됐다. 이후 김씨는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다정다감한 아빠가 됐다. 김씨는 “매 주말마다 보드게임을 하다 보니 안 해본 게임이 없을 정도”라며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아이들과 직접 게임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보드게임을 만드는 것은 일종의 ‘프로젝트 학습’이다. 기획 단계부터 제작·실행·평가 단계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준비와 노력이 요구된다. 예컨대 김씨 가족은 김양이 좋아하는 뱀주사위 게임을 ‘나의 꿈 사다리 게임’으로 새롭게 만들었다. 이를 위해 서로의 꿈과 목표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술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인 김양은 ‘공부를 열심히할 것’ ‘그림을 매일 그릴 것’ 같은 계획을 세웠다. 오빠 김형섭(서울 영훈초 5)군은 과학자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김씨와 어머니 서영애(35)씨도 각자 목표를 정하고 실천방법을 종이에 적었다. 김양은 “멋진 꿈을 갖고 있는 엄마, 아빠가 자랑스럽다”며 “서로의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들을 논의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며 웃었다.

아이디어 회의가 끝난 후에는 얼굴이 크게 나온 가족사진을 이용해 게임말을 만들고 색연필로 놀이판을 예쁘게 꾸몄다. 미술을 잘하는 김양이 실력발휘를 했다. 서씨는 “지원이가 주도적으로 만들 수 있게 격려했다”며 “그림을 그리고 가위로 오리고, 붙이는 과정을 통해 소근육과 미적 감각이 발달하는 것은 물론 성취감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보드게임을 만든 다음 실제로 게임을 해보면서 문제점과 해결책을 찾는 것도 잊지 않는다. 김씨는 “불합리한 규칙을 수정하고, 게임을 보다 재미있게 변화시켜 보면서 비판적 사고와 분석력을 키워준다”고 말했다.

가족만의 보드게임을 만드는 것은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수학적 규칙을 구현하는 복합적인 활동이다. 한국보드게임산업협회 김기찬 사무국장은 “보드게임을 만드는 것은 종합적인 지적·감성적 능력을 요구한다”며 “가족 간의 좋은 추억을 만들고 아이들의 응용력과 창의력을 키워주는 의미있는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아예 새로운 보드게임을 만드는 것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오히려 아이들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김 사무국장은 “시중에 나와 있는 보드게임 중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택해 내용과 규칙만 조금 바꿔보라”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카드 대신 친척의 사진과 이름을 적은 메모지를 이용해 메모리 게임을 하거나 부루마불에 가고 싶은 여행지를 적어 넣어 보는 것이다. 윷놀이, 체스 등 잘 알려진 게임들을 변형하거나 새로운 디자인으로 만드는 것도 손쉬운 방법이다.

보드게임의 교육적 효과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경제캠프에서는 모노폴리·슈퍼스탁스·캐시플로우와 같은 보드게임을 이용해 어려운 경제지식을 쉽게 이해시킨다. 뱀주사위 게임이나 해달별이야기·셈셈피자 등의 보드게임은 취학 전 아이들에게 숫자와 연산 개념을 알려주는데 도움을 준다. 투어코리아나 유럽여행 같은 게임을 하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의 지리나 문화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도 있다. 김 사무국장은 “보드게임을 자주 하다 보면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욕구가 절로 생긴다”며 “우선 다양한 보드게임을 해보면서 재미를 느끼고 규칙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설명]김지원(가운데)양이 부모님과 함께 직접 만든 ‘나의 꿈 사다리 게임’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직접 만든 보드게임은 창의력과 논리력·상상력 계발에 효과적이다.

< 송보명 기자 sweetycarol@joongang.co.kr / 사진=최명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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