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 '2,000억 특혜'] 1월 "필요없다"서 말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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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대그룹에 대한 특혜성 지원 논란은 정부와 채권단의 투명하지 못한 일 처리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지난 10일 채권단은 현대전자에 대한 2조원 안팎의 자금지원 방안을 발표하면서 씨티은행을 주간사로 한 2천억원의 금융기관간 협조융자(신디케이트론)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당초 1조원의 협조융자를 하기로 했는데, 지난해 8천억원만 지원해 나머지 2천억원을 추가로 지원하는 것이라서 굳이 발표할 필요가 없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월 정부와 채권단은 ▶협조융자 8천억원▶수출환어음(D/A)한도 14억4천만달러로 증액 등 현대전자 지원 방안을 발표하면서 "이 정도로 충분하며 더 이상 지원은 없다" 고 밝혔다.

당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협조융자 2천억원을 추가로 지원하면 현대전자의 자금 운용이 더 넉넉해지겠지만, 하지 않아도 유동성 문제는 전혀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두달도 안돼 정부와 채권단은 현대전자에 대한 추가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여기에는 ▶수입신용장(LC)한도 5억3천만달러를 연말까지 연장하고▶당좌대월 3천억원을 1년 동안 만기를 자동 연장하는 등 지난 1월 발표에는 들어 있지 않았던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는 "현대전자 등에 대한 지원은 과거에 정해진 것을 재확인한 것" 이라고 말했다.

◇ 현대전자 신규 지원 없었나〓정부와 주채권은행이 지난 1월 작성한 '현대전자 지원 방안' 에 따르면 ▶D/A를 14억4천달러로 늘려주되 하반기부터 점차 줄여 연말에는 6억4천만달러로 축소하고▶당좌대월 한도를 3천억원으로 유지하며▶협조융자 2천억원을 추가로 지원하는 것이 골자였다. 이같은 내용은 한번에 공식 발표되지 않은 채 1월과 지난 10일 지원 내용에 섞여 포함됐다.

대신 10일 발표에는 당초 계획에 없던 5억3천만달러의 LC한도 유지와 D/A 한도를 연말까지 연장하는 방안이 들어갔다. 이는 공식 발표분을 제외하고도 지난 1월 정부와 채권단이 마련한 현대전자에 대한 지원 금액보다 1조5천억원 정도 늘어난 것이다.

◇ 한때 법정관리도 검토〓정부와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지난 1월 현대전자의 법정관리를 신중하게 검토했지만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너무 크다고 판단해 회생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현대전자측은 지난 1월 12일 정부와 채권단에 지원을 요청하며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법정관리신청이 불가피하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당시 현대전자를 법정관리에 넣을 경우 ▶지급보증을 선 현대중공업.상선.종합상사 등에 연쇄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고▶은행권에 3조원 이상의 추가 충당금 적립이 필요하며▶증시 불안과 하청업체 연쇄도산이 우려되는 등 경제적 파장을 검토, 계열분리가 마무리될 상반기까지는 현대전자의 회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정부와 채권단은 현대전자의 해외 매각을 통한 구조조정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국제 반도체값 하락으로 올 예상 매출액이 줄어들면 이번 채권단의 지원으로도 정상화 여부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대전자의 경영 정상화는 얼마나 빨리 1백28메가D램을 주력상품으로 내놓느냐는 기술 경쟁력의 확보에 달렸다" 며 "지금처럼 64D램을 제조원가에도 못미치는 값에 파는 상황이 오래 이어지면 채권단의 지원도 밑빠진 독에 물 붓기에 그칠 것" 이라고 말했다.

이정재.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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