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근 첫 창작집 '이태리 요리…' 관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1990년 '현대소설'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며 문단에 나온 송혜근(48.사진)씨가 첫번째 창작집 『이태리 요리를 먹는 여자』(생각의 나무.7천5백원)를 펴냈다. 여섯편의 단편을 싣고 있는 이 창작집에는 오늘을 사는 중년 여인들의 삶의 일면이 잘 드러나 있다.

소설 속의 여인들은 경제적.가정적으로 풀려나 있으며 윤리적으로도 자유롭다. 그러면서도 상실감을 갖고 있는 이들의 삶을 채우는 것은 고상한 취향과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추억과 기다림이다.

맨 앞에 실린 '행복, 머무르지 않는' 은 두번의 결혼 후에 지금은 늙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중년 여성 이야기. 물과 기름처럼 잘 섞이지 않아 첫 남편과 미련 없이 헤어져 미국으로 유학왔다. 수업을 따라갈 수 없어 미련 없이 집어치우고 여자 속옷 가게에 취직해 과거가 전혀 없는, 처녀 같은 기분으로 젊음을 즐기다 30대 초반에 두번째 남자를 만난다.

첫 만남에서 호텔에 들어가, 둘은 그전 다른 상대들과의 섹스 때보다 훨씬 강렬한 희열을 맛보고 놀라운 눈으로 상대방을 인식하게 된다. 호숫가 집에서 동거에 들어간 남녀는 서로 간섭 안하고 존경하며 섹스를 즐긴다.

그러던 어느날 여자는 자기가 집에 데려온 친구와 남자가 섹스하는 것을 목격한다. 남자는 미련 없이 집을 떠나고, 지금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디서 올 리도 없는 편지를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50줄로 접어든 그녀도 그 남자로부터의 편지, 그 소식을 기다리며 호숫가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고가구나 집기에서 묻어나오는 옛 이야기들의 분위기에 싸여서. 이와 같이 『이태리 요리를 먹는 여자』에 실린 작품들은 가난과 여성의 운명의 굴레를 벗어버린 현대판 '여자의 일생' 으로도 읽힐 수 있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