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3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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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33. 부실기업 주식 처리

1980년대 부실기업 정리는 10년에 걸친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막을 내렸다.

정리 당한 쪽의 누구도 잡아 넣지 않았고 정리한 쪽의 아무도 잡혀 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부실기업 정리라는 말 자체가 풍기는 뉘앙스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부실 정리 역시 부실' 같은 인상을 준 듯도 하다.

따지고 보면 부실기업 정리는 워크아웃 등 최근의 기업 회생 방안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단적으로 부실화된 기업의 빚과 이자를 줄여 주고 새 돈을 넣어 준다는 기본 틀이 같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 채권 은행들에 한국은행이 특별융자를 지원했다면 이번엔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이 다를 뿐이다.

당시엔 부실기업들의 부채 규모가 총 8조~9조원 정도라 한은의 특융으로 해결했지만 이제 부실 규모가 커 져 그런 방식으로는 해결이 안 되기 때문에 공적자금을 대거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국민 전체가 뒤집어쓰는 길을 택한 것이다.

당시 정부가 개입한 것은 해당 기업의 자구노력만으로는 회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국제그룹 해체 당시 재무장관을 지낸 김만제(金滿堤)씨(현 한나라당 의원)는 93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제그룹에 대해 "그대로 뒀다가는 부도가 날 상황인 데다 방만한 경영으로 도저히 회생할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제3자에게 인수시키기로 했다" 고 밝혔다.

부실 채권을 떠 안고 있는 은행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도 부실기업 정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당시 부실기업주들은 새 돈을 넣어 주면 자기들이 더 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도 없었겠지만 이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은행장들이 하나같이 반대했다.

은행빚을 잔뜩 지고 있는 데다 추가 담보를 제공할 여력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한선주의 경우만 하더라도 채권 은행들이 먼저 다른 기업에 넘기는 게 좋겠다고 건의를 해 왔다.

제 3자 인수 때 나는 인수 기업으로 하여금 인수 당하는 회사의 주식을 주식시장에서 시장가격으로 사들이도록 했다. 비록 주식으로서의 가치는 없었지만 돈을 내고 사는 것과 그냥 가져가는 것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었다. 나중에 재판이라도 벌어지면 논란이 될 수도 있었다.

나의 권유에 따라 동서증권도, 대한선주도 인수 기업들이 주식을 증권거래소에서 시세대로 사들였다. 주식값이라고 해 봤자 얼마 안 됐지만 부담이 될 수도 있었다. 인수 기업으로서는 공돈이 들어가는 것 같았을 것이다. 어떻든 그 덕에 부실기업주들은 다만 얼마라도 건질 수 있었다.

대한선주를 인수한 한진그룹의 조중훈(趙重勳) 회장이 훗날 내게 고맙다고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주식만큼은 돈을 주고 사는 게 좋을 것" 이라는 나의 권유 때문이었다.

몇 푼이라도 돈이 오가는 것은 합법성을 따질 때 중요한 근거가 된다. 대가를 치렀느냐 치르지 않았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책을 들여다 보니 일본에서는 거의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들은 단돈 1엔이라도 주고 피인수 기업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었다. 5공은 부실 정리라는 '청소' 작업을 5공 책임하에 마무리지었다. 6공에 그 부담을 떠넘기지 않았다.

그리고 또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부실기업 문제가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그 동안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화석이 되어 버린 5공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정인용 前경제부총리

정리〓이필재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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