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기술로 제3세계 ‘놀라운 선물’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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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북부 사막 지대에 살고 있는 유목민 초호으라(69) 할머니의 게르(이동식 집)에 ‘휴대용 온돌기’가 설치됐다. 난로의 배기통에 연결해 사용하는 이 온돌기는 맥반석과 진흙으로 채워져 있어 열기를 오래 지속할 수 있다. 초호으라 할머니는 겨울철에 한 달 생계비 중 절반 이상을 난방비로 쓴다. 하지만 온돌기를 쓰면 난방비를 40%까지 줄일 수 있다. 이날 초호으라 할머니 등 100가구의 유목민들에게 지급된 이 온돌기는 대한민국 적정기술 1호 제품이다.

‘적정기술’이란 선진국에서 활용 가치가 높지 않지만 개발도상국 등에선 효용이 큰 기술을 가리킨다. ‘라이프 스트로’로 불리는 휴대용 정수기가 대표적이다. 식수난으로 더러운 물을 먹을 수밖에 없는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개발됐다.

대한민국 적정기술 1호 제품인 휴대용 온돌기를 탄생시킨 이들이 6일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한밭대 오용준 교수, 굿네이버스 이성범 팀장, 특허청 정필승 사무관.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이번 온돌기 개발은 긴급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인 ‘굿네이버스’와 특허청, 과학자들의 모임인 ‘나눔과기술’의 합작품. ‘나눔과기술’ 회원인 몽골 울란바토르기술대 김만갑(54) 객원교수가 ‘휴대용 온돌기’ 아이디어를 가지고 씨름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였다. 아이디어는 우리나라 온돌 기술을 활용해 몽골 현지인들의 난방비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제품화할 방법을 찾지 못해 속앓이를 해야 했다.

지난해 6월 한국에서 희소식이 날아왔다. ‘나눔과기술’ 운영위원인 오용준(46) 한밭대 교수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오 교수는 “굿네이버스에서 적정기술을 지원하고 있으니 만나 보라”고 했다. 굿네이버스 이성범(34) 대외협력팀장이 몽골로 날아가 김 교수를 만났다. 이 팀장은 김 교수에게 개발비를 지원하고 굿네이버스 몽골지부를 통해 온돌기를 지급받을 유목민 가구 100가구를 찾았다. 그는 또 “온돌기를 저가에 생산하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현지인들을 고용하자”고 제안했다.

특허청도 거들었다. 이 팀장의 소개로 특허청 정필승(34) 사무관이 “몽골에서 특허 출원하는 것을 돕겠다”고 나섰다. 몽골에서 특허를 출원해 복제 제품이 난립하는 걸 막아야 굿네이버스가 세운 사회적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으로 불리는 차드공화국 사람들을 돕기 위한 적정기술 2호 제품도 진행 중이다. “사막화로 인해 벌목이 금지되면서 음식을 조리할 불조차 피우지 못하는 차드 사람들에게 조리용 숯을 만들어 주자”는 이 팀장의 제안에 따라 ‘나눔과기술’ 과학자들이 사탕수수로 숯을 만드는 기술 개발에 들어갔다. 정 사무관은 특허청 데이터베이스(DB)에서 특허권이 소멸된 국내 기술 중 접목 가능한 기술이 있는지 찾고 있다. 차드에서 많이 나는 망고를 사계절 식량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건조하는 프로젝트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오 교수는 “적정기술 개발은 우리나라가 2010년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봉사정신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글=정선언 기자
사진=대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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