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24>얼음 무대의 배우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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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호 05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도전하는 게, 너무 슬펐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1000m가 끝난 뒤 이규혁은 이렇게 말했다. 그 얘기를 듣는 난 소름 끼쳤다. 어떤 사상가가, 정치인이, 예술가가 이런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까.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계속하는 건 바보다. 그 어리석음을 누가 모르랴. 인간이란, 삶이란 그렇게 부조리하다. 비극적 인생에 주로 초점을 맞춰 온, 러시아 연극의 거장 레프 도진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인생 자체가 비극적이다.”

그렇다. 인간의 한계는 명백하다. 누구나 그걸 알지만, 외면하고 지낼 뿐이다. 죽음이라는 마지막을 까맣게 잊은 채 잠깐의 성공에 취하곤 한다. 이규혁의 말에선 그 한계를 뼈 속 깊숙이 깨달은 자의 고통스러운 자기 고백이, 체념과 회한이 묻어 있었다. 어차피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꼭대기를 향해 바위를 끝없이 밀고 올라가야 하는 ‘시시포스’처럼 말이다. 아픔을 겪은 이규혁은 그렇다 치자. 김연아는 어떤가. 프리스케이팅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 나서 “언제가 힘들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이랬다. “피겨를 하면서 즐거웠던 순간은 잠깐이고, 고통스러울 때가 대부분이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최고의 위치에 오른 그마저도 평소 생활은 처절함의 연속이었다니, 오 인생의 비루함이여!

역정의 정점엔 이호석이 있다. 시계를 4년 전으로 돌려보자. 토리노 올림픽 쇼트트랙 1500m 결승, 그는 두 바퀴를 남겨 놓을 때까지 1위였다. 그때 안현수가 스퍼트를 올렸다. 한 바퀴 남았다는 종소리가 울리고 바깥을 치고 나가던 안현수와 안쪽을 타고 있던 이호석이 서로 겹쳐지는 순간, 어쩌면 충돌할지도 모르는 그 짧은 찰나에 이호석은 ‘멈칫’ 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안현수는 3관왕의 영예를, 이호석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선수로 묻혔다.

그리고 밴쿠버 올림픽 쇼트트랙 1500m 결승, 이호석은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린다. 한 바퀴를 남았을 때 그는 3위였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체감한 그로선 4년 전 ‘멈칫’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으리라. ‘이겨야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날을 쭉 뻗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모든 비난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래도 그는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리고 1000m 결승. 한 바퀴를 남겼을 때 그는 1위였다. 켜켜이 쌓였던 불운의 그림자는 이제 사라질 듯 보였다. 그 반전의 순간, 그는 또 역전을 허용했다. 결승선을 2위로 통과하며 고개를 뒤로 젖힌 그의 얼굴엔 수많은 감정의 굴곡이 배어 있었다.

여기까지로도 드라마는 충분하다. 아직도 500m와 계주가 남았다. 당신이 작가라면 어떤 결말을 맺고 싶은가. 마지막 금메달을 따내 역경을 이겨낸 성공 신화? 아니면 끝까지 추락하는 비극의 주인공? 이호석은 500m에선 탈락하고, 계주에선 은메달을 땄다. 다소 어정쩡한 상황에서 그의 한마디. “비록 은메달이라고 생각 안 한다. 최선을 다했고, 그래도 메달을 딸 수 있어 기분이 좋다.”

그의 말엔 ‘비록’과 ‘그래도’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에 젖어 있는, 관객의 의표를 찌른 결과이자 소감 아닌가. 이렇게 올림픽이라는 무대는 비극의 슬픔만을 강요하지 않고, 화려한 성공만을 찬양하지 않으며, 어설픈 감동 신화를 사뿐히 즈려 밟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상상력도 현실을 넘어설 수 없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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