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노동계 판도 뒤흔들 제 3세력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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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4일 충북 충주시 서울시공무원교육원에서 공식 출범한 ‘새희망노동연대(희망연대)’는 강경 투쟁의 대명사로 여겼던 한국 노동운동판에 ‘제3의 물결’을 예고하고 있다.

<본지 3월 5일자 22면>

희망연대에는 현대중공업·서울지하철· KT 노조를 비롯해 전국지방공기업노조연맹·서울시공무원노조·행정부공무원노조연맹·전국교육청공무원노조연맹 등 연맹체까지 가세했다. 60여 개 노조에 조직 대상 조합원만 23만 명에 이른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규모(각 60만~70만 명)에 비하면 적다. 그러나 희망연대에는 한국 노동운동에 큰 영향을 주는 거대 기업 노조와 공공 부문 노조가 대거 참여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활동이 노동운동 전반에 미칠 파급 효과는 적지 않을 전망이다. 또 기아자동차와 같은 강성 노조가 있는 기업의 온건 노선을 표방하는 계파 조합원들까지 가세해 밑바닥에서부터 강성 기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KT의 이석채 회장(오른쪽)과 김구현 노조위원장이 5일 서울 서초동 KT 사업장(올레캠퍼스)에서 ‘창조적 신노사문화 공동선언’을 한 뒤 악수하고 있다. [KT 제공]

희망연대에 뜻을 같이하는 노조 중에는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 소속된 노조도 있고, 상급 단체가 없는 독립 노조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두 노총의 지침이나 운동방식과는 상관없이 독자 노선을 걷는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 상태다.

민주노총 소속인 서울지하철 노조의 정연수(희망연대 공동 의장) 위원장은 “자주성이 결여된 한국노총이나 투쟁 일변도인 민주노총과는 다른 새로운 노동운동을 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갈등과 대립보다는 상생과 협력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조합원의 고용 안정과 복지 향상을 꾀하는 게 조합원의 권익 향상 활동이라는 생각에서 희망연대가 출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출범식에서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를 담은 노조법을 수용하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노조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노조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각 노조의 사정에 따라 조합비를 인상해 전임자 임금을 대든지, 조합비 인상이 어려우면 회사 일을 하면서 노조 업무를 보는 방식을 취하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두 노총이 노조법 재개정을 요구하고, 상급 단체 파견자에 대한 전임자 급여 지급을 주장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들은 겉으로는 ‘제3노총이 아니다’고 한다. 두 노총처럼 전국에 본부나 지부를 두는 것과 같은 식으로 조직화돼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들의 연대가 강해지면 제3노총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희망연대는 정기적으로 모여 성공 사례를 공유하고, 노동운동의 변화를 꾀하기 위한 활동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예전에는 노조별 노선을 걸어왔다면, 앞으로는 그 활동 내역을 공유하면서 사업장에 접목하겠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의 경우 지침을 내리면 사업장 사정과 상관없이 지침을 따라야 한다. 희망연대의 운영 방식은 이와 판이하게 다른 셈이다.

희망연대의 덩치는 커질 수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민주노총 탈퇴 도미노에다 지침 시달과 같은 두 노총의 일방통행식 운동에 염증을 느끼는 노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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