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가구? 거장 디자이너 손길 입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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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주방 한쪽을 투박하게 차지하던 냉장고가 화려한 가구로 변모하고 있다. 주부들이 실용적인 건 기본이고 디자인에 눈을 뜨면서 디자이너 거장의 손길을 탄 냉장고가 등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4일 서울 서초동 사옥에서 이탈리아 보석디자이너 마시모 주키가 디자인한 최고급 양문형 냉장고를 선보였다. 출고가는 299만원이다. [뉴시스]

삼성전자가 4일 공개한 ‘지펠 마시모 주끼 냉장고’는 이탈리아의 명품 디자이너 마시모 주키가 2년간 공들인 ‘작품’이다. 주키는 로마국립대 건축학과 출신으로 1982년 주키 스튜디오를 차린 뒤 주로 보석과 시계 디자인 분야에서 명성을 쌓았다. 5년 전 삼성전자의 MP3 플레이어 디자인으로 인연을 맺은 뒤 이번에 ‘여성이 가장 아름답게 느끼는 최고급 냉장고’를 만드는 데 의기투합했다.

주키만의 디자인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냉장고 겉표면에 발광다이오드(LED)를 이용해 보석으로 시각화한 ‘주얼리 라이팅’이다. 여기에 샴페인 잔을 따라 흐르는 듯한 손잡이는 냉장고 문을 열고 닫을 때 감각적인 예술품을 접하는 느낌을 준다.

주키는 “자연스레 흐르는 물을 표현하고 싶었다. 결국 제품을 쓰는 쪽은 사람이고 사람은 자연스러움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키의 냉장고는 블랙·골드 라벨 두 모델이다. 출고가는 299만원. 홍창완 부사장은 “넘버원 제품을 뛰어넘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온리 원(Only One)’을 지향하는 것이 우리의 신제품 전략”이라고 밝혔다.

냉장고 디자인에 가전제품 전문이 아닌 산업디자이너가 참여한 경우는 2006년 앙드레 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전자는 당시 생활가전의 고급화 전략으로 그의 디자인을 냉장고와 세탁기 등에 적용했다. 넉넉한 여백에 장미 같은 꽃그림을 그려넣어 색다른 트렌드를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LG전자도 ‘꽃의 화가’라는 서양화가 하상림의 작품을 프리미엄 냉장고 디자인에 쓰기 시작했다. 해외 명품 디자이너를 먼저 끌어들인 건 LG였다. LG는 지난해 세계 디자인계 3대 거장의 하나라는 이탈리아의 알렉산드로 멘디니에게 김치냉장고의 디자인을 맡겼다. 그는 유리에 초자 잉크로 문양을 입힌 뒤 도자기로 굽듯 섭씨 600∼700도로 가열하는 ‘초자 인쇄’ 공법을 적용해 냉장고 표면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내도록 연출했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무장한 LG의 김치냉장고는 220만원대의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9월 출시 석 달 만에 판매량 1만 대를 돌파했다.

이에 고무된 LG전자는 지난달 초 멘디니의 디자인을 가미한 디오스 양문형 냉장고를 출시했다. 이와 함께 하상림·함연주·김상윤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추가해 고객들의 디자인 선택폭을 넓혔다. LG전자 HAC사업부의 이기영 마케팅팀장은 “다양한 디자인을 채용한 752L급 모델 6종을 지난달 230만∼270만원에 출시했다. 이달에는 800L급 대용량 모델 등 25종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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