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에 걸맞게 … 가격보다 가치로 인정받은 빈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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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上海) 푸둥(浦東)지구의 최고급 백화점 바바이반(八佰伴) 백화점에 2005년 오픈한 빈폴 매장. 상하이 백화점 중 매출이 가장 많은 이곳에 빈폴은 가장 넓은 매장을 확보하고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해가고 있다.

고급 트래디셔널 캐주얼 부문에서는 비사용자 평가가 순위를 갈랐다. 종합 1위인 빈폴(71점)은 사용자 평가에서 77점을 얻어 종합 2위인 폴로(78점)에 1점 뒤졌다. 하지만 비사용자 평가에서 빈폴은 68점을 따내 폴로(66점)를 2점 앞지르면서 순위를 뒤집었다.

빈폴은 국내 시장에서 외국 브랜드가 각축을 벌이던 1989년 첫선을 보였다. 빈폴을 만든 제일모직은 당시 신사복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 제일모직이 기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새 분야에 도전장을 낸 것은 패션시장의 변화를 빨리 읽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한국은 88올림픽을 거치며 삶의 질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급속히 늘고 있었다. ‘소비자의 변화하는 욕구에 부응하는 브랜드만 살아남는다’는 패션업의 기본 원칙에 충실했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빈폴은 최적기에 시장에 진출한 셈이 됐다. 이후 자체 성장은 물론 고급 캐주얼 시장 전체를 키우는 선도 브랜드 역할을 하게 된다. 빈폴은 초기부터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했다. 품질 향상과 디자인 개발에 많은 돈을 썼다.

소비자 만족도에 대한 평가도 철저히 했다. 매년 정기적으로 선진 제품들과 비교전시회를 하며 명품 브랜드의 품질도 연구했다.

빈폴을 입어본 소비자들의 반응이 가장 큰 우군이었다. 품질에선 어떤 명품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입소문이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광고 전략도 성공했다. 93년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에 들어왔다’는 광고 문구가 소비자의 감성을 파고들었다. 이 광고는 빈폴의 인지도를 단숨에 높였다. ‘대학생들이 아껴뒀다가 미팅 나갈 때 입는 옷’으로 알려지면서 인기가 더 올라갔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패션 브랜드들이 각종 할인 정책을 펴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빈폴은 당시 할인 대열에 동참하지 않았다. 품질에 걸맞은 값을 받겠다는 고집이었다. 단기 성과에 연연하기보다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데 주력하겠다는 전략이기도 했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빈폴은 ‘노 디스카운트’ 정책을 밀고 나갔다. 가까운 사람을 위한 선물용으로 빈폴 옷을 사는 사람이 많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2001년부터는 레이디스·골프·진·키즈·엑세서리 같은 서브 브랜드를 도입하며 사업을 다각화했다. 유통 정책에서도 혁신적인 시도를 많이 했다.

빈폴은 2003년 서울 명동에 국내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플래그십 스토어(대표 매장)를 열었다. 빈폴의 모든 서브 브랜드를 한 곳에 모아 가족 전체가 ‘원스톱 쇼핑’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많은 경쟁 브랜드들이 빈폴을 벤치마킹했다. 2000년대 중반엔 다니엘 헤니와 할리우드 여배우 귀네스 팰트로를 등장시킨 광고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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