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청소년 선도 '단속' 보다 '껴안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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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1월말 경기도 의정부시 직동 수련원에서는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다.

서울 도봉구청 유해업소 단속반원(일용직)과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을 명령받은 비행청소년 40여명이 장난감 소총을 들고 야산에서 전투를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한 것.

유해업소와 문제 청소년들을 적발해 경찰에 인계하는 일을 하는 단속반의 '무서운' 아저씨.아주머니들이지만 이 날은 하루종일 친구처럼 한데 어울렸다.

게임에 참가했던 金모(17)군은 "단속반이라면 인상부터 찡그려지는데 도봉구 아저씨들은 좀 다른 것 같다" 면서 "우리들이 하는 말을 잘 들어줘 고맙다" 고 말했다.

김남희(42.주부)씨 등 단속반원들은 자영업자.회사원.주부 등 평범한 시민들. 그러나 청소년들을 바른 길로 이끄는 데 남다른 열정을 갖고 모였다.

이들은 지난해 3월부터 구청이 단속 수고비조로 개인당 3만원씩 주는 일당을 모두 내놓아 연말까지 1천여만원의 기금을 마련했다.

반원들이 자발적으로 "돈벌이 때문에 하는 게 아닌데 모아서 청소년들을 돕는 데 쓰자" 고 제의하면서였다. 밤잠을 설쳐가며 근무하는 탓에 피곤해 코피를 쏟기도 하고 업소에서 업주들과 다투다 다치기까지 하면서 어렵게 마련한 돈을 모두 청소년 후원 기금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도봉구 관내 동사무소의 추천을 받은 불우 청소년 1백여명에게 20㎏들이 쌀 한 부대(4만5천원 상당)씩을 나눠줬다.

이밖에도 단속반 회원이 청소년을 상대로 운영하는 컴퓨터 학원에서 무료 컴퓨터 강좌를 실시하고 있으며 서울 시내 초등학교 성교육 전문 상담사들을 초빙해 상담도 한다.

도봉구청 단속반 책임자인 노용오(盧龍五.41)도봉구 청소년지도협의회 회장은 "유해업소 단속의 취지는 문제 청소년을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데 있다" 고 말했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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