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이산상봉] 아들 보러온 북 황창수씨 아내까지 상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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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무정한 당신, 왜 이제야 오셨나요. " 눈물을 훔치는 백발의 부인들 앞에서 반세기 만에 돌아온 북녘의 남편들은 고개를 떨궜다.

서울에서 체신부 사무원으로 근무하다 6.25 때 북으로 간 안삼철(81)씨는 아내 심재을(77.서울 강남구)씨가 건넨 사진첩을 받아들고 오열했다.

사진첩에는 교복을 입은 안씨의 옛날 모습이 있었다. 그는 며느리와 손자 등 남쪽의 가족사진 위에 손을 얹고 일일이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들 안평(55.감정평가사)씨를 데리고 친정인 전북 군산에 가있느라 헤어졌던 아내 심씨는 곱디곱던 스물여섯살.

그러나 세차례 심장수술을 받으며 몸무게가 40㎏에도 못 미치는 할머니가 됐다. 다섯살배기 아들은 신원조회가 발목을 잡아 취업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하는 등 고통스런 청년시절을 보내고 머리칼은 반백이 됐다.

안평씨는 "한없이 원망하기도 했지만 서울대를 나오고 일본 유학까지 했던 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이 가슴 한켠에 늘 남아있었다" 고 말했다. 앨범은 친척집을 돌아다니며 옛날 사진들을 찾아 모았다고 했다.

오상렬(81)씨도 동갑내기 남측 아내 오귀례(81.경기도 고양시)씨를 만나 주름진 손을 움켜잡은 채 말을 잊었다.

치매를 앓았던 부인 오씨는 최근 남편이 북에서 살아서 돌아온다는 소식에 정신이 돌아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상봉장에 나왔다.

아들 창억(56.자영업)씨는 "아버지가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가 밤잠을 잊은 채 상봉 준비를 했다" 며 "덕분에 어머니 치매가 나은 것 같다" 고 말했다.

뜻밖의 부부상봉도 있었다.

서울의 아들을 만나러 온 황창수(84)씨는 6.25 때 헤어진 아내 송순섭(82)씨가 나타나자 "아니, 당신이 어떻게 이 자리에…"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북한에서 재혼해 5남매를 둔 황씨는 아내도 재혼했을 것으로 생각해 상봉 대상에 넣지 않았다.

그러나 50년간 수절하며 남편을 기다려온 송씨는 헤어지기 전 모습 그대로 상봉장에 서있었다. 허리가 굽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을 뿐 한복을 차려입고 분단장까지 곱게 한 모습이었다.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느냐" 며 울먹이는 황씨에게 송씨는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고맙다" 며 밝게 웃었다.

농사를 지으며 4남매를 혼자 키워온 송씨는 1991년부터 황씨의 제사를 지내왔다고 했다.

아들 순종(53.의류상.서울 동대문구)씨와 딸 순묘(64).이순(60)씨는 "그동안 밤마다 아버지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가 모처럼 웃음을 찾았다" 고 말했다.

정현목.정효식.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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