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회의 주사제 논의 무성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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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약사법 개정안을 다루는 국회와 여야 각 정당의 태도가 너무나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데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보건복지위가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주사제 문제를 심층 논의 과정도 없이 졸속 처리한 데 이어 여야 각 당 역시 골치 아픈 사안을 적당히 비켜가려는 인상이 역력하다.

보건복지위 처리 과정부터가 국민의 눈에는 못마땅하다. 의약분업 대상 포함 여부로 논란을 빚던 주사제가 '모두 제외' 로 결론지어진 과정이 석연치 않다. 논의 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반대한 민주당 의원들은 왜 표결에 불참했는지도 궁금하다. 한 의원이 "중요 법안을 이렇게 간단히 통과시켜도 되느냐" 며 항의할 정도였다니 충분한 토론이 생략된 채 무언가에 쫓기듯 처리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든다. 국회 주변에선 '담합에 의한 개악' 이란 소리도 들리고 로비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본회의 처리를 앞둔 여야 각 당의 어정쩡한 태도다. 의료대란으로 인해 그동안 우리 사회가 겪은 갈등과 시련을 돌이켜본다면 각 당은 다른 어떤 사안보다 중요하게 여기에 매달려야 옳다. 관련 업계와 단체를 접촉하고 밀도있는 내부 토론을 거쳐 나름대로의 결론을 제시해야 제대로 국민을 대변하는 정당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도출해낸 당론을 들고 여야가 다시 마주앉아 머리를 짜내고 고민하는 게 사회 갈등을 조정.치유하는 국회 본연의 모습이라고 본다.

그러나 각 당은 "당론은 없다" "의원 자율투표에 맡기겠다" 며 책임 회피 태도를 보이다 여론의 비난 화살에 마지못해 "어떤 식이든 당론을 정하겠다" 는 등 소극적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수 국민이 주사제의 약방 구입을 기피한다고 해서 그쪽 편에 선다면 표만 의식하는 국회의원들의 속셈이 너무 드러난다. 이래선 안된다. 국민 건강을 돌보는 원칙적 문제와 불편을 최소화하는 양면을 동시에 추구하는 성실한 논의 자세를 지금이라도 보여야 한다. 이익집단의 이해가 첨예하게 얽힌 문제라 자칫 어느 한쪽의 표를 잃을지 모른다고 눈치보는 것은 책임있는 정당의 태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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