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임실군 길쌈마을 "삼베 수의 주문 밀려 즐거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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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날줄.씨줄을 고르는 손길이 분주하지만 기계처럼 정확하다.

행여 실이 엉킬세라 조심조심 북을 넘기고 사이가 벌어질까 봐 입속에 물을 머금었다 내 뿜는다. 베틀의 발을 당길 때 허리는 아프지만 황금빛 삼베가 한올한올 늘어난다. 시집보낼 딸의 혼수 밑천과 막내 아들의 대학 등록금도 덩달아 짠다.

길쌈 마을로 유명한 전북 임실군 강진면 이목리. 한적한 시골마을이지만 골목길로 접어들면 '찰칵 찰칵' 소리가 물결처럼 쉼없이 흘러 나온다. 집집마다 베틀작업이 한창인 때문이다.

이 마을은 전체 60여 가구 가운데 50여 가구 주민들이 길쌈을 한다. 장수연(55)씨는 "40년 이상 길쌈 일을 해온 시어머니(87)의 뒤를 이어 30여년 째 베틀 위에서 가업을 잇고 있다" 며 "아들 셋을 대학까지 보내는데 길쌈이 큰 몫을 했다" 고 말했다.

임실군 내 삼베 생산지는 이목리를 비롯해 임실읍 장재리.청웅면 두곡리 등 여섯곳. 이들 지역에서는 연 평균 3천7백여 필의 베가 생산 된다. 한 필에 20만~22만원씩 팔리는 삼베는 수의(壽衣)를 비롯한 옷이나 이불.침대포.여름용품 등으로 쓰인다.

올이 가늘고 질 좋은 삼베의 생산지로 소문난 임실군에는 요즘 전국 각지로부터 구입문의가 줄을 잇는다.

올해는 4년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음력 4월 윤달(양력 5월 23일~6월 20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윤달에 수의를 사놓으면 부모님이 장수하고 자손이 번창한다는 속설이 있다. 삼베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길고도 복잡하다.

우선 봄에 파종하고 6월에 삼나무를 잘라 삶는다. 껍질을 벗기고 말린 뒤 일일이 손톱으로 가늘게 찢는다.

다시 말려서 물에 적시고 이빨로 쪼갠후 손으로 하나하나씩을 비벼 서로를 잇는다. 물레질을 해 삼태래를 만들고 껍질을 벗기기 위해 다시 양재물에 삶는다. 그 뒤 물레를 돌려 배필 맞추기를 한 뒤 베틀에 올린다.

이 가운데 삼을 잇는 과정은 특히 고달프다. 수천.수만가닥의 삼을 무릎 위에 놓고 손으로 비비다 보면 살갗은 후끈거리고 피멍이 절로 맺힌다.

이렇게 만든 삼을 베틀에 올려놓고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쉬지 않고 일해야 겨우 한필(20자)을 짠다. 봄 한철동안 한집당 평균 20~30필, 많을 경우 40여필까지 짠다.

그러나 베틀작업 역시 쉬운 것만은 아니다. 일단 베틀에 앉으면 불가피한 경우 외에는 최대한 오랫동안 앉아 삼베를 짜는게 원칙이다. 잠깐이라도 쉬었다 다시 시작하면 앞.뒤의 결 조직이 달라지게 된다.

이 때문에 삼베를 짜는 주민들은 주변사람이나 딴일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도록 밤중에 베틀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짠 삼베가 팽팽히 당겨지도록 허리에 몰티를 감고 오른쪽 발만 사용해 북을 놀려야만 한다.

이에 따라 임실군은 베틀작업을 보다 쉽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개량베틀을 만들어 보급 중이다. 개량베틀은 몰티를 허리에 차지 않아도 된다. 양발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작업 능률은 옛날보다 1.5배 정도를 높이는 장점이 있다.

이금례(73)씨는 "평생하는 길쌈 일이 정말 지긋지긋혀. 그래도 놀고 있으면 몸이 찌뿌둥하고 자꾸만 아파 온당께" 라며 환하게 웃었다.

임실=장대석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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