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샤를 트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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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프랑스'란 단어가 연상시키는 여러 이미지 가운데 샹송처럼 프랑스다운 것도 없다. 그만큼 독특하면서도 보편성이 있다. 요즘이야 미국 팝송 비슷한 ‘프렌치 팝’이란 것도 있고 빠르고 요란한 헤비메탈이나 랩 형식의 샹송도 있지만 역시 1950∼70년대의 샹송이 진수라 할 수 있다.

시를 음유하듯 웅얼거리는 노래로 허름한 카페를 찾은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고,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며, 인생의 고독을 읊조리는 샹송은 그래서 우리 정서에 더 다가오는 것 같다.

에디트 피아프·이브 몽탕·모리스 슈발리에·조르주 무스타키·미레유 마티유·실비 바르탕·아다모…. 우리에게 인기 있는 샹송 가수는 이름을 대기가 숨이 찰 정도로 많다. 유난히 눈이 흔했던 지난 겨울, 거리의 음반가게나 FM라디오에서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를 종종 들었을 것이다.

이들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샤를 트레네를 빼고 프랑스 샹송을 얘기할 수 없다. 그의 이름은 잘 몰라도 그의 대표곡인 ‘라 메르’(La Mer·바다)의 멜로디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다. 이처럼 그는 바다, 특히 고향인 남프랑스 나르본 인근 지중해의 풍광을 서정시처럼 묘사한 노래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대부분의 샹송 가수들이 그랬듯 그도 여러 방면에 재능이 많았다. 1913년 태어난 그는 7세때 최초의 샹송을 작곡할 정도로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원래 문학지망생이었다. 젊은 시절 장 콕토 등과 사귀며 메르퀴르 드 프랑스지에 시를 발표하기도 했고, 소설을 두 편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천부적 목소리를 알아본 모리스 슈발리에에 의해 그는 가수로 본격 데뷔하게 된다. 38년 ‘붐(Boum)’으로 그해 디스크 대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스타로 발돋움한 그는 60년이 넘는 가수생활 기간 중 1천여곡의 샹송을 직접 작곡하고 노래했다.‘샹송의 태양왕’‘노래하는 광인’으로 불리는 그는 86세이던 지난해 11월까지도 콘서트를 열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팬들을 만났다.

우스꽝스런 모자에 빨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꽂고 나타나 팬들에게 너털웃음을 선사하던 그가 지난 19일 사망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애도성명을 내고 ‘언어의 마술사’였던 트레네가 ‘프랑스 웃음의 상징’이었다고 추모했다. 트레네는 그렇게 샹송의 전설이 됐다.‘라 메르’를 다시 들으며 그의 명복을 빈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jsy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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