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盲點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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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간단한 실험 하나. 흰 종이 위에 가위표와 점을 5㎝ 정도 간격으로 그린다. 가위표가 왼쪽에 오게 종이를 손에 든다. 왼 눈을 감고 오른 눈으로 가위표를 응시하며 천천히 종이를 든 손을 얼굴 쪽으로 당긴다. 어느 순간 동그란 점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마술이 일어난다. 맹점(盲點)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인간은 누구나 망막 한가운데 시신경 다발이 뇌로 이어지는 블라인드 스팟을 갖고 있다. 본디 ‘맹(盲)’이란 글자는 눈이 있어도 시력을 잃어 볼 수 없다는 뜻이다. 화기(火器)나 레이더의 유효거리 안에 있음에도 효력이 닿지 않거나 자동차 후사경으로 볼 수 없는 곳은 사각지대(死角地帶)다.

옛날 옛적에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먼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태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져 옆 사람에게 물었다. “태양은 구리쟁반(銅盤)과 같소.” 장님이 쟁반을 찾아 직접 만지고 두드려 봤다. ‘당당당’ 소리가 났다. 그 후 길을 가다 종소리를 듣고는 “저것이 바로 태양이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지나던 사람이 태양은 촛불처럼 빛을 낸다고 말해줬다. 손으로 초 한 자루를 만져본 장님은 어느 날 피리(籥)를 잡아보곤 큰 소리로 외쳤다. “이것이 정말 태양이다.”

북송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일유(日喩)’란 글에 남긴 ‘맹옹문약(盲翁捫籥·눈먼 노인이 피리를 만지다)’이란 고사다. ‘구반문촉(毆槃捫燭·쟁반을 두드리고 초를 만지다)’이 같은 말이다. 남의 말만 듣고 사물의 단편적인 부분만을 본 뒤 진실을 인식하지 못함을 경계하는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휩쓸던 2008년 말 갓 취임한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이 “구반문촉의 우(愚)를 범하지 말자”며 “세밀한 분석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고 말했다.

연초 리콜 사태로 세계 최강의 제조업체로 공인받아온 일본 도요타가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됐다. 그동안 고품질과 고효율은 도요타 방식의 양대 핵심이었으나, 생산공정만 강조하는 풍조가 개발·설계 단계의 맹점을 낳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맹점은 인간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맹목(盲目)적인 맹종(盲從) 대신 혜안(慧眼)을 뜰 때 풀린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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