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역사서 첫 판권계약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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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북한 고대사 연구서가 정식 판권계약을 거쳐 국내에서 출간된다. 도서출판 중심(대표 윤덕한)은 지난해 말 북한의 조선출판물수출회사와 판권계약을 맺은 데 이어 이달 초 통일부로부터 반입승인을 받아 이달 말 첫권을 낸다. 판권계약을 통한 북한 역사서의 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의 우리 역사 연구 알기’란 타이틀로 나오게 될 시리즈는 모두 일곱권이다. 이달 말 나오는 제1권 『고조선 력사 개관』을 비롯해 『광개토왕릉 비문 연구』 『발해국과 말갈족』 『조선의 고인돌 무덤 연구』『평양 일대의 락랑무덤에 대한 연구』 『동해안 일대의 발해 유적에 대한 연구』 『조선의 관혼상제』 등이다. 올해 안에 차례로 출간된다. 이밖에 『백두산 총서』 동물편·식물편 각 한권과 『장수의 비결』이란 의학서도 함께 나온다.

이번에 출간하는 역사서는 지난 1∼2년 사이 북한 사회과학원에서 펴낸 ‘최신판’이다. 『고조선 력사 개관』은 99년에, 나머지는 지난해 나왔다. 북한 저작물의 특징을 반영하듯 모두 사회과학원 연구원들이 집단창작했다.

윤덕한 사장은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공개할 수 없다”며 “국내 단행본 저작물에 준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학자나 전문가들의 수요를 고려해 일단 권당 1천부를 찍을 예정이다. 출판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김정일 동지께서는…” 운운하는 식의 군더더기 서술만 삭제하고 내용은 그대로 살려 편집했다.

이번 북한 역사서 출간은 남한의 고대사학계에 좋은 자극제인 동시에 많은 논란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조선의 건국 연대 등에 관한 남북한 역사학계의 시각차가 현격해 『고조선 력사 개관』의 출간을 계기로 ‘고조선 논쟁’이 가열될 가능성도 있다.

경북대 주보돈(한국고대사학회 회장) 교수는 “북한은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BC 3천년까지 소급하거나 고조선의 정치적 중심지를 중국의 랴오둥(遼東)이 아닌 평양으로 상정하는 등 우리와 다른 학설을 제기하고 있다”며 “그동안 남한의 학자들이 접하지 못한 자료를 눈으로 확인함으로써 다양한 역사해석이 가능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지금까지 남한에 소개된 북한 역사서들은 주로 중국의 옌볜(延邊)이나 일본에서 나온 해적 출판물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그 내용과 주장의 신뢰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는 등 자료적 가치가 떨어졌다. 중심 출판사는 앞으로 고대사에 이어 근·현대사 저작들도 낼 예정이어서 연구서를 통한 역사학계의 남북한 교류는 본격 해빙기에 접어들 전망이다.

정재왈 기자<nicola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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