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日 지식인들의 역사왜곡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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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의 역사학자와 교육자 등 지식인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교과서의 문부성 검정 통과에 극력 반대하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東京)대 명예교수 등 일본의 양식있는 지식인 8백89명은 그제 발표한 긴급 성명을 통해 극우 역사연구단체인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이 검정 신청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가 문부성 검정을 절대 통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사실(史實)을 왜곡하는 교과서에 역사 교육을 맡겨서는 안된다' 는 제목의 성명에서 지식인들은 문제의 교과서는 "허구의 신화를 역사적 사실처럼 쓰는가 하면 근대 일본의 전쟁을 '아시아 해방전쟁' 으로 묘사하고 있다" 고 비판했다.

또 교과서로 채택될 경우 2차 세계대전 전의 독선적 역사 교육이 부활함으로써 일본의 국제적 고립이 불가피하다는 심각한 경고도 덧붙였다.

문제의 교과서는 2백곳 정도의 수정을 거쳐 다음달 초 문부성 검정을 통과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성명은 이에 대한 일본 내 지식인 사회의 긴박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일본 내 의식있는 지식인 단체들은 문제의 교과서에 대한 우려를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표명해 왔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에 대한 극우 진영의 폭력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 일본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본의 시사지 '주간 금요일' 최신호는 역사 왜곡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에 대한 테러와 협박 사례를 낱낱이 폭로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했듯 문제의 책은 철저히 황국(皇國)사관에 맞춰 재구성된 일종의 역사 선전물이지 결코 교과서가 될 수 없다고 본다.

일부를 수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1980년대 교과서 파동 이후 스스로 정한 '외국 관계 서술은 국제 이해와 국제 협조의 견지에서 배려한다' 는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식인들의 양심의 소리에 겸허하게 귀 기울일 것을 일본 정부에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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