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금감원 낙하산 감사 자제한다더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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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금융회사 감사 선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공모 절차를 통해 감사를 선임토록 권고하겠다.” “만 54세 부서장의 일괄 보직해임제도를 폐지해 재취업 희망 인력을 줄이겠다.”

지난해 11월 17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재취업자 관련 향후 운영 방안’이다. 금감원 퇴직 간부들이 금융회사 감사(또는 상근감사위원) 자리를 싹쓸이하다시피 한다는 본지 보도가 나오자 내놓은 대책이다. <본지 2009년 11월 17일자 E1면, 18일자 E1면>

하지만 올 들어 이사회에서 내정되거나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금융회사 감사나 상근감사위원은 대부분 금감원 출신이다. 사후 대책이 별다른 효과를 못 내고 있다는 것이다.

1일 금융업계에 따르며 부산은행은 지난달 26일 신임 상근감사위원으로 정모(55·올 2월 퇴직) 전 금감원 국장을 내정하고, 26일 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렸다. 하나은행은 9일 이사회에서 금감원 국장급 출신 조모(56·올 2월 퇴직)씨를 내정키로 의견 조율을 마쳤다.

하나은행과 부산은행은 금감원이 권고한 감사 공모제를 실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감사 인사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두 전직 국장급의 경우 보직에서 물러난 것이 새 대책을 시행한 지난해 11월 이전”이라고 해명했다. 금감원 김장호 총무국장은 “두 사람 모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한 만큼 취업에 문제가 없다”며 “외국에서도 아예 취업을 못 하도록 하는 사전 규제 대신 부당한 유착을 막는 사후 규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금융회사에 감사 공모제를 시행하도록 권고해 왔지만 강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사들은 감사를 선임할 때 복수의 후보를, 순위를 매겨 추천해 달라고 금감원에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금감원은 순위를 매기지 않은 채 2~3명을 추천해 주곤 한다. 익명을 원한 금감원 간부는 “금융사들에 특정인을 받으라고 압박하는 일은 없다”며 “가급적 금융사의 자율을 존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인사 압력을 자제했지만 결과가 예전처럼 나왔다는 얘기다.

이처럼 인선제도가 어찌 됐든 금융회사들이 금감원 출신 감사를 선호하는 현상은 바뀌질 않는다. 이유는 금감원 검사에 대비해 소통할 창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계의 정설이다. 내부 인사를 감사로 선임할 수 없는 제도상 금융회사들은 금감원 출신을 가장 선호한다.

지난달 4일 제일화재와 합병한 한화손해보험도 임시주총에서 금감원 국장 출신인 L씨를 상근감사위원으로 선임했다. 제일화재는 금감원 출신의 L씨를, 한화손보는 감사원 출신을 각각 감사로 두고 있었는데 합병으로 자리가 줄자 금감원 출신을 선택한 것이다.

금융권에선 은행보다 숫자가 많은 증권사와 보험사의 주주총회가 몰려 있는 6월에는 금감원 출신 감사의 숫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금감원 퇴직 간부들이 계속 금융회사 감사 자리를 장악할 경우 검사와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금감원이 올해부터 규모가 큰 금융회사들에 대한 검사를 매년 실시할 예정이어서 그 같은 문제가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국대 강경훈(경영학) 교수는 “금감원의 검사나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시장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며 “적어도 대형 금융회사의 감사는 금감원 출신이 곧바로 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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