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문화] '전통'과 타협한 이집트 벨리 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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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일강 유람선에서 배꼽춤을 추고 있는 하미스. 그녀는 세살 때부터 춤을 배웠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이슬람의 단식월인 라마단 시작을 알리는 초승달이 나일강 검푸른 물결 위에 걸리는 초저녁. 이 시간이면 조명이 휘황찬란한 유람선들이 나일강 복판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저녁 뷔페가 제공되는 배 안에는 벌써 힘찬 아랍의 타악기 소리와 함께 한 여성 댄서의 요란한 '몸 풀기'가 시작되고 있다.

일명 '배꼽춤'이라 불리는 벨리 댄싱이 관중들의 힘찬 박수와 함께 무대 위에 올려진 것이다. 지난 19일 유람선 '나일 파라오'에 승선한 벨리 댄서는 하미스(26). 숙련된 허리 돌리기.가슴 흔들기 동작을 보여주는 하미스의 얼굴에 오늘따라 굵은 땀방울이 많이 맺혀 있다. 라마단이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가슴과 하체의 일부만 가리고 시원하게, 그리고 신나게 춤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어깨부터 발까지 길게 덮는 원피스 형태의 좀 '답답한' 의상을 차려 입었다. 그러나 라마단 기간 중 춤을 출 수 있는 것만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신성한 단식월에 이처럼 요염한 춤을 추는 것은 사회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특히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이슬람 원리주의가 거셀 때는 벨리 댄싱이 아예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이슬람 과격세력의 공격이 수그러들면서 이집트 벨리 댄서들은 '타협안'을 제시했다. "최소한 라마단 달에는 평소보다 노출이 덜한 것으로 차려입겠다"고.

벌써 20년 넘게 춤을 춘 하미스는 배꼽춤과 이슬람 사회의 '줄다리기'에 이력이 나 있다. 세살부터 카이로의 한 사교 클럽에서 춤을 배운 그는 다섯살 때 처음 동네 결혼식에 나가 '돈벌이'를 위한 춤을 추었다. 재미로 배운 춤이 커서는 생활수단이 되었고, 본인도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월급이 한화로 6만원도 채 안 되는 가난한 공무원. 그러나 하미스가 이 유람선에서 받는 돈은 한달에 3000파운드(약 60만원)다. 여기에 결혼식.생일 등 개인 파티나 나이트클럽 수입도 매달 수천파운드에 달한다. 덕분에 그녀의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가용을 몰고다니며 즐긴다. 오빠는 하미스의 매니저로 나섰다.

하미스는 이슬람 세계에서는 혼기가 지난 나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언제든 춤을 그만둘 작정이다. 하지만 밤무대 댄서라 '여염집 규수'로 대접받기는 힘들다. 그녀는 "요즘 들어 부쩍 결혼과 아이 생각이 자주 들어요. 여자로서 당연한 꿈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외국에서 몰려온 댄서들의 '시장 잠식'도 문제다. 이제는 전통춤에서도 러시아 댄서들과 숨막히는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미스는 "많은 나이트 클럽을 늘씬한 몸매와 금발의 러시아 댄서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90년대 초 이슬람주의자들의 협박으로 유흥업소들이 자국민 대신 외국인을 댄서로 고용하기 시작한 것이 화근이라고 했다.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 하미스는 체중을 15kg이나 줄였다. 머리도 금발로 염색했다. '라카스'로 알려진 터키의 벨리 댄싱과 달리 이집트 배꼽춤은 풍만한 육체의 움직임이 특징이다. 그러나 서구문화에 젖은 젊은이들은 이집트 댄서들이 뚱뚱하다는 이유로 외면하기도 한다.

이슬람 전통, 서구문화의 유입, 외국 댄서와의 경쟁. 이집트 전통 벨리 댄서의 '삼중고'다. 하미스는 그래도 자부심에 가득차 있었다. "수천년 전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가슴과 아랫배를 흔들면서 시작된 벨리 댄싱의 혼이 내 몸에 그대로 살아있답니다."

카이로(이집트)=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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