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신지역주의] 2. 독일 바이에른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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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해 12월 중순 날씨가 쌀쌀한 독일 뮌헨 중심가 시청 앞 광장. 국가 속의 국가로 불리는 바이에른의 주도인 이곳에 마침 전통의상인 가죽 반바지에 꿩털 모자 차림의 나이 지긋한 신사가 눈에 띄었다.

얼른 달려가 "독일인(Deutscher)이냐" 고 물었더니 즉각 "아니요, 바이에른 사람(Bayer)" 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TV방송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독일 방송들은 방송을 끝낼 때 독일 국가(國歌)를 연주한다.

그렇지만 이곳 바이에른의 방송들은 "신이 그대와 함께, 그대 바이에른 나라,…" 로 시작하는 바이에른 주가를 먼저 연주한 뒤 독일 국가를 연주한다.

바이에른주를 흔히들 '국가 속의 국가' 로 부르는 이유를 언뜻 알 만했다. 독일 16개 주 가운데 가장 크고 소득수준이 가장 높으며 실업률은 가장 낮은 곳이 바이에른이다.

때문에 바이에른 사람들의 자부심도 대단해 타지역 독일인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바이에리시' 로 불리는 이 지역 사투리를 자랑스럽게 장려하고 일상에서 사용한다.

물론 학교에선 '호흐도이치' 란 표준말을 가르치지만 자기네들끼린 자랑스럽게 바이에리시를 쓴다.

1990년대 초 아키히토 일왕이 뮌헨을 방문했을 때 의전차량은 통상 외국 국가원수용으로 쓰는 벤츠 600이 아니라 BMW 750이었다. 의전차량뿐 아니라 경찰차나 관용차는 대부분 BMW다. BMW가 뮌헨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이기 때문이다.

49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탄생한 이후 바이에른에선 지역정당인 기사당(CSU)이 지금까지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다른 정당, 예컨대 현재 독일 연방정부의 집권당인 사민당(SPD)이 집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바이에른 주정부 내무부의 미하엘 치글러 대변인은 "바이에른이 특히 지방색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정치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지방색은 오히려 각 주 사이에 '누가 주민을 잘 살게 하느냐' 는 선의의 경쟁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다" 고 말한다.

그는 "중앙정부와 주정부, 자치단체들간의 권력 분점이 지역갈등을 없애는 요체" 라고 설명했다.

즉 연방이 국방.외교.경제.사회보장 등 '거시적' 정책들을 관장하는 대신 주정부는 교육.경찰.공공보건 등 주민에게 밀접한 '미시적' 정책들을 담당한다.

이 때문에 소학교가 바이에른에선 4년이지만 베를린에선 6년일 정도로 교육정책이 주마다 다르다. 수도.가스.전기.쓰레기 등은 지자체 소관이다.

그러나 연방과 주는 대립의 개념이 아니며 상호 보완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러기 위해선 돈, 즉 재정 자립이 필수적이다.

바이에른주 경제기술부 자비네 야로테 박사는 "전체 세수(稅收)를 중앙정부가 절반, 주정부와 자치단체가 나머지 절반을 나눠 갖는다. 물론 잘 사는 주가 동독지역의 못사는 주를 도와주기도 한다" 고 말한다.

지방정부의 재정이 튼튼하기 때문에 유능한 인재들이 굳이 중앙으로 몰릴 이유도 없다.

야로테 박사는 "요즘 바이에른 사람들이 가장 경쟁의식을 느끼는 지역이 이웃 바덴 뷔르템베르크주" 라고 말한다.

옛날엔 북독일 사람들을 '자우 프라이세' (돼지 같은 프로이센놈들)로 부르며 싫어했지만, 사람들이 서로 섞인 지금은 그 대신 모든 면에서 선두를 다투는 바덴 뷔르템베르크주가 '앙숙' 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바덴 뷔르템베르크의 수도인 슈투트가르트 인근에서 BMW의 맞수인 벤츠가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느껴진다.

'망국적' 이란 표현이 관용어처럼 붙는 우리의 지역감정을 중앙에 몰려 있는 '먹거리 싸움' 이라고 단순화한다면 답은 쉽게 나온다.

결국 지방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주는 등 지방자치제도를 더욱 확대해 권력과 돈, 그리고 사람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이다.

뮌헨〓유재식 특파원,

스트라스부르.브레타뉴〓이훈범 특파원바르셀로나.빌바오〓예영준 기자,

로마.밀라노〓조강수 기자,

에든버러.브뤼셀〓이상언 기자,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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