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티제 르노삼성차 대표, 호텔서 요리 수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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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마리 위르티제 대표가 직접 만든 꼬리곰탕을 맛보고 있다. [정치호 기자]

“이거야말로 정말 진국이에요 (It’s a rich stock). 육수가 뽀얗고 담백한 것이 아주 끝내 줍니다.”

르노삼성자동차 장 마리 위르티제 대표이사(59)는 꼬리곰탕만 나오면 사족을 못 쓴다.

“꼬리곰탕의 맛은 참 매력적이죠. 뜨끈한 꼬리곰탕에 잘 익은 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정말 최고입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데도 안성맞춤이죠.”

그가 꼬리곰탕을 처음 맛본 것은 한국에 부임한 2006년의 겨울. 지방 판매지점을 방문했다가 점심때 한국 직원들의 권유로 먹어봤다. 그때의 맛을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육수 맛이 일품이었어요. 그리운 고국의 맛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고기를 삶거나 뼈를 푹 고아서 야채와 함께 우려낸 맑은 국물에 꼬리 살을 발라 만드는 ‘꼬리 콘소메’가 있는데 꼬리곰탕이 그 맛을 떠올리게 했다는 것이다.

위르티제 대표는 “미국에선 주로 고기만 먹고 뼈는 버리지만 유럽에는 한국처럼 뼈로 국물을 내는 문화가 있다”며 “꼬리곰탕은 유럽인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한식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가 남색 앞치마를 두르고 꼬리곰탕 만들기에 도전하자 옆에서 도와주던 인터컨티넨탈 호텔 서울의 배한철 총주방장은 “꼬리곰탕은 갈비나 비빔밥과 달리 외국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한식인데 여기에 도전한 것이 너무 놀랍다”고 말했다.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 육수에 청주를 넣자 위르티제 대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프랑스에서도 같은 이유로 포도주를 넣는다”며 신기해 했다.

육수에 인삼과 대파를 썰어 넣자 위르티제 대표는 “인삼은 왜 넣나. 몇 년산을 쓰느냐” 고 꼼꼼하게 물었다. 배 총주방장은 “비린내를 없애주고 건강 증진 효과도 있어서 넣는데, 주로 3년근을 쓴다”라고 설명했다. 배 총주방장이 “깊은맛을 내려면 낮은 불에 오랫동안 끓여야 한다”고 하자 위르티제 대표는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화답했다.

“곰탕을 만들다 보니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라는 격언이 생각나네요. 사람 역시 ‘진국’이 되려면 그만큼 인내를 갖고 어떤 일이건 꾸준히 해야 한다는 뜻이겠죠.”

프랑스 국립 교량-도로 대학교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위르티제 대표는 1988년 제조본부 산업기획팀 책임자로 르노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한국에 진출한 유럽 기업들의 모임인 주한 유럽상공회의소 회장도 맡고 있다.

꼬리곰탕이 완성되자 그는 국물을 맛 본 뒤 능숙한 젓가락질로 꼬리 수육를 간장 소스에 찍어 입에 넣었다. 맛있다며 감탄을 하던 그는 “여기에 소주 한잔 곁들이면 정말 좋겠다”라는 말까지 했다.

“유럽에선 한국 소주 한 병에 무려 20유로(3만1000원)나 합니다. 너무 비싸요. 한-EU 자유무역협정이 올해 발효되면 소줏값이 내리겠죠.”

한식세계화를 위한 충고도 잊지않았다.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메뉴를 단순하게 하는 일입니다. 유럽에도 많은 한식이 소개됐는데 김치나 갈비를 제외하곤 메뉴 설명이 너무 복잡해서 뭔가 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먹기 쉬운 음식부터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좋아요.”

한국문화를 적극 활용해 마케팅을 하라는 조언도 했다. “프랑스에도 수없이 많은 치즈가 있지만 이를 해외에 소개할 때에는 치즈 원산지의 지역을 함께 소개합니다. 한국도 긴 역사와 다양한 문화를 음식과 함께 알리면 좋을 겁니다.”

글=이은주 중앙데일리 기자
사진=정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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