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를 다지자] 35. 대형할인매장 무질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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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설 대목을 앞두고 남편과 함께 집 부근 할인점에 갔다.

쇼핑 카트 두대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을 만큼 통로는 널찍했지만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선 지나갈 수 없었다. 모두 살 물건을 고르느라 쇼핑 카트를 여기저기 방치했기 때문이다.

'비켜주세요, 지나갑시다' 라고 외치며 겨우 빠져나갔다.

할인매장 한 구석에서 악취가 나 살펴보니 30대 여성이 데리고 온 강아지가 용변을 보고 있었다. 매장 입구에 개를 묶어두고 쇼핑하는 선진국을 떠올리고 있을 때 또 한켠에서는 50대 남성이 "캭" 소리와 함께 가래침을 뱉었다.

대형 할인점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우리도 유통 선진국이 됐다는 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쇼핑문화는 예전 재래시장의 무질서와 별 차이가 없다.

우리 매장만 해도 어린이들이 뛰어다니며 장난치거나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많다. 또 그들의 손.발이 카트에 끼거나 무빙워크에서 장난치다 다치는 안전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골랐다가 마음이 바뀌면 물건을 아무데나 슬쩍 놓아두는 고객도 있다. 샘플이 엄연히 진열돼 있는데도 화장품 등 제품을 뜯어보기도 한다.

한 여름 밤 노출이 심한 옷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오거나 술에 만취해 제품을 집어 던지는 등 행패를 부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쇼핑 카트를 끌고 도로까지 나가거나 아예 집으로 가져가는 소비자도 더러 있다. 이런 식으로 할인점 점포마다 전체 카트의 1%가 매달 분실된다.

그래서 요즘 대부분 유통업체는 카트에 동전을 넣어야 사용할 수 있게 잠금장치를 해두고 있다. 문제는 소비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일부 할인점 직원들은 붐비는 시간에 "짐이오" 라고 소리지르며 상품 운반차를 몰고 제품을 진열한다.

선진국 매장에선 영업시간에 소비자들의 쇼핑에 불편을 줘가며 상품을 보충하는 곳이 극히 드물다.

장혜진 <신세계 이마트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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