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연·기금 주식투자 신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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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어제 증시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을 높일 방침을 밝혔다.

또 재정경제부측은 현재 총자산의 10%인 주식투자 비중을 이른 시일 내에 20%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덧붙였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증시 안정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또 개인.외국인 투자자의 비중이 유난히 높은 우리 주식시장 현실을 감안할 때 기관투자가의 비중을 높일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온 국민의 노후생활이 걸린 연.기금을 동원하겠다는 발상에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정부는 선진국의 예를 들지만, 외국과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외국의 연금은 개인이 선택하는 사적(私的)연금이나 기업연금이지만 우리의 국민.공무원.사학연금은 의무사항이자 대부분의 국민에겐 유일한 노후생활 수단이다.

이런 돈을 '원금 까먹을 수 있는' 주식에 대거 투입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외국도 사회보장연금은 안전성을 중시해 주식에 거의 투자하지 않는다.

게다가 걸핏하면 연기금을 증시 부양 수단으로 동원하는 정부 행태를 감안할 때 더욱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지금도 4대 연금이 부실해 20~30년 후면 재원이 바닥날 지경인데, 위험 부담을 더 키우겠다니 잘못된 것이다.

이로 인해 연.기금이 구멍나 연금 수령자들이 돈을 못받는 사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정부로선 답답할 것이다.

최근의 민심 악화가 경제 침체, 특히 주가 하락에 기인한다고 생각하는 정치권으로서도 하루 속히 증시를 되살려야 할 필요성이 절실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국민의 최후 보루인 연금의 주식투자를 대폭 늘리겠다는 발상은 문제가 있다. 보다 신중히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반짝 부양이 아니라 구조조정을 통한 경제의 체질 개선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연.기금의 방만한 운용과 정부의 자의적 개입을 막고 연.기금 운용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도 강구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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